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2일 런던 의회에서 EU 탈퇴협정 법안 관련 토의를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유럽연합(EU) 탈퇴협정 법안을 신속 처리하는 계획안이 의회에 벽에 막혀 부결되면서 이달 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가 물 건너갔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당장 강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공은 연기 결정 권한이 있는 EU로 넘어갔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이날 존슨 총리가 내놓은 EU 탈퇴협정 법안을 사흘 내에 신속 처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계획안’을 찬성 308, 반대 322로 부결시켰다. 110쪽의 본문과 124쪽의 설명서로 이뤄진 EU 탈퇴협정 법안에는 영국과 EU가 합의한 탈퇴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영국 내부적으로 필요한 각종 절차와 규정 등이 담겼다.
계획안 통과가 좌절되자 존슨 총리는 EU 탈퇴협정 법안 상정을 잠정 중단하고, 영국의 브렉시트 추가 연기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지 EU가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존슨 총리는 지난 19일 EU와의 새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 투표가 영국 의회에서 보류되자 이전에 통과된 법률에 따라 오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의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EU에 발송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의회에 참석해 유럽연합(EU) 탈퇴협정 법안을 신속 처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계획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하원은 존슨 총리가 내놓은 계획안을 부결시켰다./런던=로이터연합뉴스
EU는 즉각 연기 결정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계획안이 영국 의회에서 부결되자 트위터로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기 위해 영국의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EU 27개국 정상들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연기 기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브렉시트 추가 연기 기간을 수일 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독일은 EU 제안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존슨 총리는 빠른 브렉시트를 위해 짧은 기간을 원하고 있다. 그는 “의회가 브렉시트 단행을 거부하고, 내년 1월이나 이후로 연기하려 한다면 정부는 이를 더 지속할 수 없다”면서 “그렇게 될 경우 매우 유감스럽게도 법안을 취소한 뒤 총선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의 운명은 EU가 어느 정도의 기간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BBC는 만약 EU가 짧은 기간을 줄 경우 영국 의회가 노딜 브렉시트를 우려해 합의안을 가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존슨 총리가 보다 합리적인 법안 통과 의사일정을 제안한다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혀 다시 법안이 상정될 경우 찬성표를 던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EU가 브렉시트 연기 기간을 장기간으로 정하면 존슨 총리의 희망대로 조기총선이 치러질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9월 영국 하원이 조기총선 실시 동의안을 부결시켰지만, 제2 국민투표를 원하는 노동당이 총선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조기총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다만 조기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자칫 노딜 브렉시트나 브렉시트 무산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존슨 총리가 조기총선을 단행할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