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3·4분기 성적표를 속속 내놓고 있는 가운데 실제 실적이 예상보다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고 업황도 조금씩 개선되면서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지만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성과를 기록한 기업들이 늘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들어 3·4분기 실적을 발표한 45개 상장 기업 중 3·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기업은 전체의 40%를 넘는 19곳으로 나타났다. 컨센서스와 부합하는 기업(3% 이내 차이)은 10곳이었으며 전망을 웃도는 기업은 16곳으로 조사됐다.
애초 증권가에서는 올해 3·4분기 기업들의 실적이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미중 무역분쟁 등 세계 정치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에도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기업들의 실적에 대한 기대감과 눈높이는 많이 낮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상반기 부진했던 실적을 불러왔던 상황이 3·4분기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다”며 “상황이 안 좋은 만큼 기업들도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3·4분기 실적 발표가 시작된 가운데 시장의 컨센서스보다 20% 이상 실적이 줄어든 ‘충격’에 가까운 성적표를 든 기업도 상당수 나오고 있다. RFHIC의 경우 영업이익 전망치는 18억원이었지만 4억원의 손실을 보면서 적자전환했고 쌍용차는 지난해보다 2배 가까운 1,05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물산(028260)도 2,751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됐지만 600억원 가까이 축소된 2,163억원의 이익을 기록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아울러 현대차(005380)·LG상사(001120)·동화기업·포스코ICT 등도 시장 전망보다 훨씬 못한 성적표를 속속 내놓았다.
3·4분기부터 실적 개선세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오면서 ‘실적 바닥’에 대한 논란도 연말까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증시전문가들은 대체로 3·4분기 실적 개선세가 다소 더디기는 하지만 바닥을 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스몰딜’이기는 하지만 미중 무역협상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낸데다 반도체·통신 등 주력산업의 업황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 정책도 다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만큼 3·4분기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3·4분기 컨센서스가 꺾인 것은 현대차의 엔진 리콜 비용이 반영된 영향이 컸다”며 “우려가 크기는 하지만 정책도 전환되고 있어 바닥을 확인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센터장도 “4·4분기는 지난해의 기저효과 때문이라도 상대적인 실적 개선세가 보일 것”이라며 “이미 삼성전자(005930) 등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으며 주력산업인 반도체가 어느 정도 유지만 된다면 실적은 뒷받침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역시 변수는 미중 무역분쟁의 완화 정도다. 예정대로 미국과 중국이 스몰딜에 대한 협상을 완료해 오는 12월 관세 부과가 단행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함께 박스권에 갇혀 있는 증시에 대한 상승 기대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윤 센터장은 “기업 실적이 안 좋은 상황에서 증시의 상단이 막혀 있지만 열 수 있는 여지는 있어 보인다”며 “증시의 바닥은 찍은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대외적으로 미중 관계, 국내적으로는 정부 정책에 따라 상황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