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도쿄 시내 캐피털 호텔 도큐에서 열린 일본 경제인 초청 오찬에서 일한경제협회 회장인 사사키 미키오 미쓰비시상사 특별 고문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도쿄=연합뉴스
“한국과 금형산업 협력을 30년 동안 했습니다. 인턴십으로 길러낸 한국 기술자가 700명입니다. 한일 소년 교류도 지원했는데 갑자기 중단됐어요. 마음이 아픕니다.”
우에다 가쓰히로 오가키정공 회장은 지난 24일 오후 도쿄의 한 호텔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현재 한일의 정치 갈등 상황으로 인해 기업과 민간 교류가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에다 회장은 무엇보다 소년 교류 중단에 대해 “어른들 책임”이라며 “이 총리도 어른이니 해결과 재발 방지에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만남은 이 총리가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위해 지난 22일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계기에 현지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하겠다는 목적에서 마련했다.
경제인들과 회동은 방일 마지막 날인 24일 출국 직전 이뤄졌다. 우에다 회장 뿐 아니라 나카니시 히로아키 게이단렌 회장(히타치제작소 회장),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장(미쓰비시상사 특별고문), 하시모토 가즈시 도레이 상임고문, 아소 유타카 아소시멘트 대표, 사토 야스히로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 회장 등 일본 주요 경제인 11명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선 비즈니스 환경 악화에 대한 성토, 교류 중단에 대한 안타까움, 한일 기업들이 함께 해야 할 지향 점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참석 경제인들의 발언은 이 총리가 지난 24일 저녁 일본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직후 서울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직접 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도쿄 시내 캐피털 호텔 도큐에서 열린 일본 주요 경제인 초청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명함을 주고받고 있다./도쿄=연합뉴스
경제인들, 도쿄 한복판서 한일 정치 갈등 성토
이날 참석한 경제인 대부분은 한국과 일본을 종종 오가는 터라 방한 계기 공개 또는 비공개로 이 총리와 여러 차례 만나거나 의견 교환을 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만나게 된 이들은 한일 정치 갈등으로 인해 파탄 직전인 민간 교류에 대한 안타까움과 기업들이 마주하고 있는 애로 사항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하시모토 가즈시 도레이 상임고문은 오사카의 번화가인 텐진바시 상가 분위기를 전했다. 하시모토 고문은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특히 한국말, 중국말을 많이 해서 어느 나라 오사카인지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요즘 중국말만 들린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고문은 “50년간 한국과 관련 있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잘 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토 야스히로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 회장은 다시 한번 정치 때문에 비즈니스를 흔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은 일본이 3대 메가뱅크 중 한 곳이다. 그는 “한국의 일부 언론이 일본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에 준 융자를 회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보도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며 “일본 정부로부터 그런 요청도 없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사토 회장은 일본 정부가 지난 7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예고하자 한국을 직접 찾았다. 한국에서 일본계 자금 회수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회동했다. 사토 회장은 재계 인사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하고, 이 총리와도 별도로 비공개 면담을 했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도쿄 시내 캐피털 호텔 도큐에서 열린 일본 주요 경제인 초청 오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도쿄=연합뉴스
“한일 간 공동 과제, 솔루션도 함께 만들어야”
정치적 어려움 속에서도 기업과 민간의 교류는 지속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일 공동 과제 공동 해결을 제안했다. 도쿠라 대표는 일본 내각부의 종합과학기술·이노베이션 회의 멤버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도쿠라 대표는 “한국과 일본은 인구 감소, 저출산·고령화, 자원 빈국, 환경·에너지 문제 등에 부닥쳐 있다는 등 공통점 있다”며 “이노베이션을 통해서 공통 과제에 대한 솔루션을 함께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업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닛칸고쿄신문의 이미즈 하루히로 대표도 의견을 더했다. 이미즈 대표는 “양국 관계만 보지 말고 제3국에서 한일 기업이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하고, 공동 진출하는 그런 걸 중요시해야 된다”고 말했다.
참석 경제인들은 “한 일 기업들이 함께 할 일이 많다”는 점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또 “서로 주고 받고 이런 것만 보지 말자”는 의견도 냈다. 세계적인 기술 발전, 데이터 관리, 글로벌 스탠다드 작성 등은 한일 경제계가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글로벌 스탠다드 선점은 기업들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주로 유럽·미국·한일이 경쟁하는 구도여서 여기서 밀릴 경우 한국과 일본 기업은 함께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
경제인들은 정치적 갈등이 크지만 민간 교류, 인적 교류는 계속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 참석자는 “26년째 고교생 교류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번에 서울에서 했다”며 “양국의 부모들 가운데 부정적 문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캠프에 참가했던 일본 고교생의 감상문도 소개했다. 사흘 만에 평생 갈 친구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한국 청년들의 에너지를 언급하면서 한국인 직원 채용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함께 면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도쿄=연합뉴스
李총리 “정부가 경제 좀 내버려둬야…”
이 총리는 경제인들의 제안과 지적을 꼼꼼히 메모했다. 이 총리는 이들에게 “양국관계의 부침에 관계없이 한국의 파트너들과 계속해서 협력해달라”며 “한국 정부도 한일간 비즈니스 협력 확대를 위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청소년 교류의 필요성와 어른들의 책임 의식 대해서는 크게 공감했다.
이 총리는 기자들에게 “어제부터 얘기했고 오늘 비공개로 만난 한 지도자한테 말했다”며 “정부가 경제를 좀 내버려 두자… 그런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해 한일 간 비즈니스에 제약이 늘고 있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 총리는 “일본 사회는 말하지 않아도 한쪽으로 분위기가 잡힌다”며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공기’라고 하는데 그런 공기가 있다고 하면 다 그쪽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