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에 위치한 KCC 대죽2공장. 유기실리콘 원료부터 제품까지 일괄 생산한다. /사진제공=KCC
세계 2위 실리콘 업체 모멘티브 인수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KCC의 하이엔드 실리콘 시장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년간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삼성전자에 대한 납품이 가능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시장에서는 과거 도시바 등에 실리콘 납품 이력이 있는 모멘티브의 탄탄한 레퍼런스 등을 고려할 때 KCC가 도약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CC는 국내 고사양 실리콘 시장에 연착륙한 뒤 2조원이 넘는 아시아 시장으로 보폭을 넓힌다는 목표다.
27일 반도체 소재 업계 등에 따르면 KCC·원익·SJL파트너스 등으로 구성된 KCC컨소시엄은 연말까지 모멘티브 자산 인수를 마무리한다. 지난 6월 총 30억 달러(약 3조 5,000억원)인수 대금을 지급한 만큼 신속하게 인수 절차를 밟는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모멘티브의 실리콘 사업은 KCC, 석영사업부는 원익이 가져가는 방안이 유력하다.
관심은 KCC가 실리콘 시장에서 얼마나 성장하느냐다. 덜 알려져 있지만 KCC는 지난 2004년부터 실리콘 사업을 해왔다. 태양광 실리콘인 무기 시장과 반도체 접착제·성형보조물 등에 쓰이는 유기 시장에 모두 진출했을 만큼 기술력도 갖췄고 그룹 차원의 애착도 강한 편이다.
하지만 지난 2013년 태양광 실리콘 사업을 접은 데 이어 유기 시장에서도 낮은 브랜드 인지도로 고전해왔다. 국내 실리콘 시장 규모는 6,000억원(업계 추정) 정도인데, 지난해 KCC 매출 2,000억원은 거의 전부 중저가 시장에서 올린 것이다. 유무형의 장벽에 막혀 15년간 2,000억원 규모의 국내 하이엔드 시장을 뚫지 못했다는 얘기다. 안방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메이저 고객을 잡으면 아시아 시장에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실리콘 사업 볼륨을 크게 키울 여지가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드 유저인 애플이 KCC 납품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바람에 국내 대기업 납품 계약 8부 능선에서 KCC가 좌절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저가 시장에 맴돌던 KCC가 모멘티브 인수로 전환점을 만들 여지도 있다”고 예상했다.
전 세계 실리콘 시장은 182억달러(2018년 기준, 업계추산)다. 한화로는 20조원 정도다. 최근 6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5.7%에 이른다. 특히 국내 기업이 강한 반도체·스마트폰 등 전기·전자 분야가 전체 시장의 20%(4조원)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절반 넘는 57%(2조 2,800억원) 가량이 아시아의 몫이다. KCC로서는 국내에서 고급 거래 선을 뚫으면 연간 2조원 남짓의 아시아 전기·전자 실리콘 시장에서 활약을 기대해볼 만하다.
실제 연 매출 2조 7,000억원이 넘는 모멘티브는 아시아 시장에서는 세계 1위 다우듀폰에 크게 밀린다. 삼성전자에도 다우듀폰이 실리콘을 납품하고 있다. KCC가 내년에 반전을 만들어내면 아시아 시장에서도 시장 구도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인도에 스마트폰 공장이 있어 바람을 탈 수 있다.
이 경우 KCC와 삼성 간 밀착도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KCC는 삼성물산의 2대 주주다. KCC의 정상영 명예회장 장남인 정몽진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각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재계에서는 KCC가 삼성과 지분 관계를 맺은 이후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에 각종 건자재를 납품하는 등 협력관계가 훨씬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