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행사가 많은 기관이다. 정부조직 중에서 청(廳)은 현장을 뛰는 부처라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가 청장의 별명이 ‘이동중(移動中)’일 정도다.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은 남한 땅 300억평에 산재한 문화유산과 땅속 매장문화재, 1,200억평 바다에 빠져 있는 수중문화재, 게다가 천연기념물인 몽골의 검독수리와 태국의 노랑부리저어새까지 다 헤아릴 수가 없다.” 3대 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의 말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년 내 각종 기념식과 개막식, 보고회와 대회가 이어진다. 행사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사회 보는 이가 잘 이끌어줘야 성공한다.
11일 전주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 개막식을 이끈 오정해씨는 문화재청이 손꼽는 사회자다. 이날도 관객을 흥겹게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조교인 송순단씨가 등장하자 트로트 가수로 뜬 송씨의 딸 송가인을 언급하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초등학생일 때 김소희(1917~1995) 명창의 제자로 들어가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최연소 장원을 한 소리꾼 오정해는 임권택 감독의 판소리 영화 ‘서편제’로 국악인이자 배우로 거듭난다. 요즘은 공연과 방송 진행자로 더 널리 알려졌는데 “만담, 농담, 장난이 좋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올해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신영희(77) 명창은 이 분야의 선구자다. 그는 1988년 KBS 프로그램 ‘쇼 비디오자키’의 ‘쓰리랑 부부’에 등장해 추임새를 넣어가며 마당극 형식의 이 개그코너가 인기몰이를 하는 데 감초 구실을 했다. 당시에는 전통음악 하는 이가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 출연이 웬 말이냐는 욕도 먹었지만 그의 소신은 분명했다. “이 좋은 예술을 우리끼리만 앉아서 좋은 것이여, 하면 뭐한답니까.”
요즘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트로트 오디션 열풍을 보면서 세 여성 소리꾼을 생각했다. 스승인 김소희 명창의 맥을 이으면서도 대중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 신영희·오정해, 집안 내림을 받아 중앙대에서 전통음악을 전공했으면서도 트로트에 우리 소리를 접목한 송가인. 유익서의 소설 ‘민꽃소리’의 한 대목 ‘우리 시대에 가장 참혹하게 패배하고 있는 전통, 죽어가는 국악’을 대중 가슴속에 명랑하게 던지면서 살려낸 이들은 용감했다.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위해서는 대중음악·대중문화와 서슴없이 접속하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 문학인이면서 음악애호가인 장정일씨는 ‘장정일의 악서총람’에서 일갈한다. “음악 교육 타령을 하기보다 국악이 자신의 사지와 몸통을 대중음악에 잘라줄 각오를 하는 것이 활로다.”
전통은 문자 그대로 전(傳)해서 통(統)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원형 그대로를 보존해 대물림하는 것이 근본이지만 당대와 호흡하며 소통해야 산다. 세 여성 소리꾼은 ‘변화는 있지만 변함은 없는’ 행보로 그 길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