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틈 비집고 국내시장 진출나선 테슬라

정부가 정확한 사고원인 못찾고
국내 ESS생태계 위축된 사이
테슬라는 판매 인증절차에 착수
中 1위사도 美진출 등 드라이브
국내업체들 점유율 빼앗길 우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자사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테슬라


정부가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의 정확한 원인도 찾지 못하는 사이 미국 테슬라가 국내 ESS 시장을 노리고 있다. 정부 대책 발표 이후에도 잇따른 화재사고로 국내 ESS 생태계가 위축되면서 글로벌 ESS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던 국내 업체들이 테슬라와 중국 CATL 등에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위기상황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국내 ESS 판매를 위한 한국전지산업협회(KBIA) 단체표준 인증 절차에 들어갔다. ESS 배터리와 ESS 완제품에 대한 인증이 완료되면 태양광·풍력 연계형 대용량 ESS 제품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출시 예정 ESS는 배터리 용량 기준 100㎾·200㎾급부터 100㎿h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ESS 화재사고로 틈이 발생한 국내 시장을 해외 업체들이 앞다퉈 진입하며 활개를 칠까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 6월 밝힌 ESS 화재원인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일부 배터리 셀의 제조 결함을 확인했음에도 “같은 조건에서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안전대책을 내놓은 뒤에도 4개월간 추가 ESS 화재가 4건이나 발생하면서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명확한 화재원인에 대한 규명 없이 땜질식 대책 발표에 급급한 사이 해외 업체들은 ESS 배터리를 새 먹거리로 삼고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히 글로벌 배터리 1위 업체인 중국 CATL이 ESS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CATL은 지난해 ESS 사업에서만 전년 대비 1,000% 이상 증가한 1억8,900만위안(약 3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271Ah·100Ah·92Ah의 ESS 배터리를 판매 중인 CATL은 미국 ESS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미국 내 배터리 공장 설립 또한 검토 중이다. 국내 업체들의 주력제품인 삼원계 배터리보다 안전성이 높고 수명이 긴 ESS 전용 리튬인산철 배터리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위협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판매예정인 테슬라의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진제공=테슬라

중국 내 배터리 2위 업체인 BYD 역시 ESS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BYD는 단독으로 정부 입찰에 참여하기보다 ESS 사업 개발사 및 전력사를 중심으로 공급처를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 궈쉬안은 상하이전기·화웨이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해외 ESS 시장을 공략 중이다. 테슬라는 내년 초 일본 시장에 진출해 가정용 배터리 ESS인 ‘파워월’을 공급하기로 했다.

급성장하는 글로벌 ESS 시장에서 자칫 국내 업체들이 해외 업체들에 점유율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터리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ESS 배터리 시장 규모는 올해 12.7GWh에서 오는 2021년 2배 수준인 24.6GWh로 확대된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정용을 중심으로 ESS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삼성SDI는 글로벌 ESS 배터리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최근 고강도 안전대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배터리 업계 자체의 노력만으로 국내 ESS 생태계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LG화학은 이달 25일 콘퍼런스콜에서 “(화재의 영향으로) 올해 ESS 관련 국내 매출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이번 기회에 화재의 원인을 확실하게 밝히고 정확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체된 한국 산업의 구원투수로 거론되는 배터리가 방화범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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