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국·미국 등 32개국 수사기관이 공조수사를 통해 검거해 영업이 종료된 비공개 브라우저 ‘다크웹’의 아동 성착취 영상 유통 웹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메인화면 캡처. 미국 법무부는 지난 16일 홈페이지에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한국인 손모씨의 공소장 등을 공개했다. /사진제공=미국 법무부
미국 법무부가 다크웹에서 아동 성착취 영상 8TB를 유통한 한국인 운영자를 공식 송환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검찰 안팎에서는 양국 간 범죄인 인도조약상 송환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국내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미국에서 강력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어 우리 정부의 결정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28일 검찰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다크웹에서 유아·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영상 20만건을 유통한 웹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를 운영한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된 한국인 손모(23)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심사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가 최근 공식적으로 손씨 강제송환을 요청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손씨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항소심 끝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송환에 긍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 사례를 참고해 양국의 사법 협력이 공고히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이 도출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내국인의 해외 송환이라는 점에서 자국민 보호 외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범죄의 심각성 차원에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양국 간 조약에 따른 범죄인 인도의 대상인지 검토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도 송환이 가능하다는 시각이 많다. 국제형사 분야 전문가들은 손씨 사건에 대해 “절차적으로 미국 송환이 가능하며 법무부 장관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범죄인 인도조약과 인도법을 살펴보면 손씨의 경우 장기(長期) 1년 이상의 자유형으로 처벌 가능한 범죄에 해당하고 미국에서 범죄수익 세탁 등 다른 혐의로도 기소돼 있어 이중처벌 소지에도 불구하고 송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손씨 공소장에 따르면 손씨는 아동 성착취 영상 홍보·배포 등 성범죄 외에도 범죄자금 세탁 등 총 아홉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국제관계팀장은 “범죄인 인도조약은 철저한 상호호혜적 조약이라 ‘이태원 살인 사건’ 피의자를 국내로 송환받았던 케이스에 비춰볼 때 우리 정부가 단순히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는 조항을 이유로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며 “특히 범죄수익을 목적으로 한 아동 포르노 제작·유통이라는 중범죄가 국경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했고, 주범이 한국인인 만큼 송환 요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미국 법무부는 한 국내 언론에 “아동 성착취 영상 관련 혐의에 대해 미국에서는 최소 20년형에서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손씨를 미국으로 보내 강력하게 처벌받게 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같은 날 기준 “아동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한 손모씨와 사이트 이용자들의 합당한 처벌을 원합니다”라는 청와대 청원에는 26만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국내에서는 아청법상 아동음란물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배포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돼 있으나 손씨의 경우 그 죄질이 중함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같은 웹사이트에서 아동음란물을 1회 다운로드한 미국인이 징역 70개월에 의무가석방 10년형과 함께 3만5,000달러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받은 것과 대조된다.
다만 국내에서 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자국민을 해외로 송환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법원에서 공방이 예상된다. 법무부에서 근무했던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불인도가 기본 원칙인 만큼 인도 재판이 열리면 피의자 측에서는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같은 사안에 대해 이미 한국에서 처벌받고 있고 재판의 기판력이 미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