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국민이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계속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광장에다 맡길 거면 국회가 문을 닫아야지요.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크게 반성, ‘대오각성’해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대담=문성진 정치부장 hnsj@sedaily.com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있는 집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과 그의 사퇴 과정에서 나라가 두 동강 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국론이 분열된 것과 관련해 “여나 야나 같이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야당은 제한적 책임을 져야 하는 반면 여당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 뜻을 어떻게 잘 받들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6선 국회의원으로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그는 정치권에는 통렬한 자성을 촉구했지만 우리 국민은 높게 평가했다. “국민은 참 위대합니다. 촛불집회 때도 그렇고, 이번 집회 때도 그렇고 아주 질서정연하게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할 수 있는 영국·독일·프랑스에서조차도 두 집회 때만큼의 인파가 모이면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최근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도 몇 만 명만 모이면 난리가 납니다.”
정 전 의장은 경색돼 있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제언도 내놓았다. 우선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가진 회담에 대해 평가했다. 그는 “한일 관계가 경색된 이후 양국의 정상이 조우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스치고 지나가게 했던 게 일본이었다”며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담이 성사된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정 전 의장이 제시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회담이었다.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담을 전후해 정부 간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양국 의회간 대화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두 나라의 경제인, 민간 역시 최근 대화를 가졌습니다. 이 상태로 새해를 맞는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연내 만나 현재 두 나라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난제’를 일거에 풀고 대반전을 이뤄내야 합니다.”
‘보텀업’ 방식이 아닌 ‘톱다운’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지를 재차 물었다. 정 전 의장은 앞서 올해 8월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는 아직 접점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톱다운 방식이 아닌 보텀업 방식의 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면서 “세계 경제가 만만찮은 상황에서 일본은 우리의 제안에 호응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아베 총리가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고 힘줘 말했다.
민주당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의장은 한일 관계 개선과는 별개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글로벌 분업 구조서 우리나라 실력에 걸 맞은 몫을 담당하려면 경쟁력 강화는 필수”라며 “우선은 당장 필요한 소재·부품·장비를 확보하고 그다음은 수입선 다변화를 해야 한다. 그 후에는 국제 분업 구조에 우리 실력에 맞게 참여할 수 있을 만큼의 국산화를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통’이기도 한 정 전 의장은 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제일 나쁜 정책이 바로 ‘냉온탕’ 정책입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속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지만 방향은 맞다고 봅니다. 보완 방안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규제 완화로 민간의 투자를 유도하고, 공공 부문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국회는 4차 산업혁명 대비 법안을 서둘러 처리하고 노사는 노동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입니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회 상황에 대한 질문에는 “참으로 중증”이라고 답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당의 국회혁신특별위원회가 대책으로 검토 중인 방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당 혁신위는 국회 회의에 10차례 무단결석한 의원에 대해 직무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는 “약속이 부도가 불신만 남는다. 차라리 결석한 날만큼 세비를 지급하지 않는 내규를 만든다면 현실적이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정 전 의장은 의장으로 재임 중이던 지난해 4월 국회 공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자진해 세비를 반납한 바 있다.
그는 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를 놓고 대치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여야 합의가 안 된다고 표류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전 의장은 “노무현 정부 때 내가 정책위의장을 하며 추진했던 게 바로 공수처 설치”라며 “공수처 설치를 하지 않고도 개혁을 이뤘다면 지금의 요구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검찰권을 분산시키고,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며 “검찰권은 원래 행정권의 일부다. 인사 등을 대통령, 즉 행정부가 관장하는데 공수처는 인사에 있어서도 야당이 반대하지 않는 이를 중용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제도 개편과 대해서는 “현역은 좀 늦어져도 별 상관 없겠지만, 원외 위원장이나 정치 신인은 ‘게임의 룰’도 모르고, 자기 선거구가 어디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선거제 개편을 미루자는 건 기득권자의 양심 불량”이라고 일갈했다.
끝으로 내년 총선에 대한 결심이 섰는지를 물었다. 그는 “지역구민을 만나보면 출마를 권유하는 의견이 많다”며 “지도부와 상의도 해야 하고, 조만간 입장을 천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임지훈·하정연기자 jhlim@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