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민생이다] 기업 적자에도...親勞정책 업은 노조, 자기몫 챙기기 급급

<하>일방적 노조친화 방향 틀어야
포드·닛산 등 글로벌업계 생존위해 감원 나서는데
국내 노조는 성과급·격려금 달라며 총파업 잇달아
"산업정책 실종...정부·여당 경제 판 바꾸는 결단을"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판매 부진과 전기구동화로의 혁명적인 흐름이 겹쳤다. 최대 신흥시장인 중국과 인도의 올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11.0%, 10.3% 줄었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시장도 감소세다. 한국도 지난 2015년 456만대 수준이던 자동차 생산량이 지난해 403만대로 줄었다. 올해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400만대가 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앞다퉈 생존을 위한 감원에 나섰다. 미국 포드가 내년 말까지 유럽에서 1만2,000여명을 줄이기로 했고 영국 재규어랜드로버도 4,500명을 내보내기로 했다. 독일 폭스바겐은 7,000명, 일본 닛산은 1,700명을 감원한다.

한국 노동조합만 ‘딴 세상’에 있다. 한국GM 노조가 성과급과 격려금 1,650만원을 달라며 총파업을 벌였다. 여러 차례 파업 끝에 올 6월에야 2018년 임단협을 타결했던 르노삼성 노조는 기본급 8% 인상을 요구하면서 올해 협상도 갈등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노조 요구만 보면 두 회사가 호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GM은 지난해 8,594억원 등 최근 5년간 4조4,447억원의 누적 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군산공장이 지난해 2월 폐쇄됐고 글로벌 본사는 북미 지역 5곳, 글로벌 2곳 등 세계 각지의 생산성이 낮은 공장들의 문을 닫기로 했다. 폐쇄 공장 후보에 가동률이 50% 수준인 창원공장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장 유지 압박에도 미국공장의 문을 닫는 GM이다.

르노삼성도 마찬가지다. 적자 상황에서 르노삼성을 구했던 닛산 로그 위탁 생산 물량이 내년 3월 끝나는 막막한 상황에서 신차 생산물량은 정해진 게 없다. 스페인이나 일본 등의 공장과 물량 배정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다.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서 생산성 향상은커녕 공장의 존재 이유를 깎아 먹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 상황에서 파업으로 일관하는 한국 노조에 대해 한 경제단체의 관계자는 “회사가 망해도 망하기 전에 자기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게 한국의 강성 노조”라며 “회사가 망해도 새 주인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기업이 망해도 정부와 정치권이 세금을 투입해 연명하며 고용을 유지해준 상황이 이어져 왔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 등 조선업계다. 대우조선에는 그동안 13조7,000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산업은행의 관리 아래 ‘공기업화’돼왔다. 올해 20년 만에 현대중공업그룹에 넘기는 계약을 맺었지만 노조는 유럽연합(EU)까지 날아가 현지 경쟁 당국에 “기업결합심사를 반대해달라”고 원정시위를 벌였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 노조는 산업은행 체제에서 공기업처럼 존재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얘기”라며 “하지만 이번에 민영화에 실패하고 ‘빅3 체제’가 유지되면 앞으로도 국내 업체끼리 해외에서 저가 수주와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영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계속되고 있는 과도한 친노동 정책이 이 같은 노조의 강경투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번 정부 들어 나온 경제정책이라는 게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화학물질관리법 같은 각종 산업 규제 등 모조리 노조 친화적인 정책뿐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정책 속의 독소조항을 약간이나마 수정하려는 노력마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게 경영계의 토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은 바라지도 않고 40%만이라도 기업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며 “지금처럼 10대90, 0대100으로 가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산업 정책이 아예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2017년 기준 30.4%로 주요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조 강국’ 하면 떠오르는 독일(23.3%)이나 일본(20.3%)보다 높고 29.3%인 중국보다도 비중이 크다. 하지만 자동차·조선 등 주요 제조업의 상황은 ‘풍전등화’다. 국가대표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마저 외부 자문위원으로부터 오는 2025년까지 생산직 인력을 최대 40% 줄여야 친환경·미래차 시대에 생존할 수 있다는 분석을 받아들었다.

조선업은 전통 경쟁국인 중국·싱가포르뿐 아니라 러시아·사우디 등 새로운 신흥국들마저 직접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우 올해가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수주 달성률이 올해 목표의 약 48%에 불과하다. 대우조선도 목표 달성률이 61%에 그치고 있고 가장 낫다는 삼성중공업도 약 70%다.

한 관료 출신 인사는 “후배 관료들을 만나보면 청와대와 여당의 눈치만 볼 뿐 나서서 산업 정책을 만들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윗분’들의 답이 이미 정해져 있어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이 친노동 정책에서 시장 친화적으로 방향을 틀고 경제의 판을 바꾸는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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