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고등학교 인근 학원가의 모습./오승현기자
지난 27일 중등 입시업체 메가스터디교육 엠베스트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진행한 ‘특목고·자사고(자율형사립고) 입시전략설명회’는 해당 고교 입학을 지망하는 학부모와 학생들로 가득 찼다.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도 2022학년도 대학입학 전형부터 정시 비중을 확대키로 한 탓이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일반고로 일괄전환하겠다면서도 자사고·특목고에 유리한 정시 확대를 병행한 모순적 정책의 결과”라며 “일괄 폐지되기 전까지는 교육청 재지정 평가에서 살아남은 자사고들의 인기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대학입학전형 정시 확대의 후폭풍에 일선 교육현장이 들썩이고 있다. 유명 학원가에는 자녀가 중학생·초등학생인지를 막론하고 유리한 입학 전형을 묻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특히 교육 1번지인 강남에서는 ‘금수저 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을 손 보겠다는 정부 의도와는 정반대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 정시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따르면 2016~2018학년도 기준 서울대에 정시로 입학한 학생 중 사교육 밀집 지역인 서울 강남 2구와 양천구 학생의 비중의 24.5%에 이른다. 강남구에서만 지난 3년간 347명이 서울대에 정시로 입학했다. 4대 광역시 합격생 모두를 합친 325명보다 더 많다. 또 서울 지역만 놓고 보더라도 강남·서초구 출신이 절반가량인 43.2%에 달했다. 이 때문에 강남 지역 학부모나 학생들은 과목별 학원 강습이나 과외로 수능에 대비할 수 있다며 이번 정시 확대 발표를 내심 환영하고 있다. 최근 문정주·최율 한국교원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도 자신의 계층이 높다고 생각할수록 정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치동의 한 학원 관계자는 “학종에 대비해 고액 컨설팅을 받는 학생은 대체로 수능 대비 사교육도 철저히 받는다”면서 “씁쓸한 현실이지만 정부가 어떤 안(案)을 내놓든 잘 사는 집 학생들은 다른 지역 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 강남 지역에서는 정시 비중이 확대될 경우 재수생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28일 지하철 3호선 대치역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재수생 이모(19)군은 “소위 ‘집안 좋은’ 아이들은 정시 선발 비중 확대를 반길 것”이라며 “설령 점수가 예상만큼 안 나와도 재수를 해서라도 명문대에 진학하겠다는 것이 ‘강남 아이들’과 ‘강남 엄마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강남권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정시 확대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중구의 한 고등학교 1학년생 김지수(16)군은 “수시를 늘린다고 해 학종 전형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학내 활동과 내신 관리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정시로 더 많이 뽑겠다니 혼란스럽다”며 “수능 대비도 안 해온 것은 아니지만 억울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대입 정시 비중이 확대되면 사교육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종로구에 거주하며 중학교 3학년생 자녀를 둔 박모(42)씨는 “수시 비중을 키웠다가 정시 비중을 키우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빠르면 지금 고1 학생들이 수능을 볼 때부터 정시가 확대된다고 하니 학원이나 과외를 추가로 등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작용이 우려됨에도 국민은 여전히 ‘그나마 정시가 학종보다 더 공정하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이 초등 전문 교육업체 아이스크림에듀에 의뢰해 1,133명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시 비중 확대에 찬성한 비율은 66.46%(753명)에 달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문 대통령이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대입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22일 의회 시정 연설 직후인 24~25일 진행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수능 절대평가 방침이 무너지고 정반대로 정시 비중이 올라가게 된 상황을 초등 학부모들까지 관심을 기울이면서 높은 찬성률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정시 비중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답변이 49.43%로 거의 절반에 달했다. /이경운·이희조 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