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심사 발표시간 '고무줄' 논란

정권 실세·대기업 총수들은
새벽시간에 결과 발표 잦은데
죽은권력·일반인엔 '속전속결'
"영장판사 여론의식 고의 조절"
법조계서도 형평성 논란 우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등 굵직한 권력형 사건이 잇따르면서 법원 영장판사들의 ‘고무줄식’ 구속심사시간이 다시 한 번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의 거물 인사나 그의 측근, 재벌 총수들의 경우 이유 없이 다음날 새벽에 결과를 발표하면서 ‘죽은 권력’이나 일반인들, 현 권력과 관련이 있더라도 중요도가 떨어지는 인물들만 속전속결로 판단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법조인들은 영장판사들이 비판 여론을 의식해 영장심사시간을 고의적으로 조절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29일 서울경제가 최근 3년간 주요 권력형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구속영장 발부·기각 시간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현직 유력 정치인이나 권력 핵심인사, 재벌 오너일수록 자정을 넘겨 결론을 발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조 전 장관 의혹과 관련해서는 사건 주변부 인물인 이모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최모 웰스씨앤티 대표(오후9시8분), ‘웅동학원 뒷돈 전달책’ 조모씨(오후10시5분)와 박모씨(오후9시4분) 등 대부분이 심문 당일 저녁 시간대에 영장 결과를 받았다. 반면 조 전 장관 동생 조모씨(오전2시23분), 정경심 동양대 교수(0시18분) 등 여론의 포화를 맞을 수 있는 조 전 장관 가족의 경우 다음날이 돼서야 결과가 나왔다. 현 정권 실세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해서도 영장판사는 심문 다음날 0시42분이 돼서야 기각 발표를 했다.

이는 전 정권 권력 핵심들에 대한 영장을 심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기 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전3시47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오전1시9분·첫 영장) 등 실세 정치인 대다수가 다음날에야 결과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오전10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3시3분까지 총 16시간33분이 걸려 영장을 발부받았다.


재벌 총수에 대한 고심은 더 깊었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은 2017년 1월 오전10시30분에 심문을 시작해 18시간23분 뒤인 다음날 오전4시53분에 기각 판정을 받아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2월에는 심문 시작 19시간5분 뒤인 오전5시35분에 발부 판정을 받아 기록을 경신했다. 뇌물을 함께 주고받았던 최순실씨가 심사 7시간40분 만인 당일 오후11시에 바로 구속된 점을 감안하면 비상식적으로 긴 시간이었다는 지적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영장판사는 2016년 9월 오전10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3시50분까지 17시간20분을 고민했다.

사법부 내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전직 법원 고위인사들에 대한 영장 판단이 늦어진 것도 눈에 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오전2시3분),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0시37분·첫 영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오전1시57분) 등 사법농단의 핵심 연루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나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서울경제DB

반면 이미 오래전에 권력에서 멀어졌거나 찬반 여론이 갈리지 않는 인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빠른 결단을 내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에 연루된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은 심문 당일 오후10시49분, 오후11시8분에 각각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전 대통령 본인조차 심사 당일 오후11시6분부터 구속 절차를 밟았다. 똑같이 심문을 포기했는데 전직 대통령보다 현직 법무부 장관 동생에 대한 고민을 3시간17분이나 더 했던 셈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장관(오후11시1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오후7시6분) 등도 당일 영장 결과를 얻었다.

영장판사들의 종잡을 수 없는 심사시간은 대다수 법조인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법적 기준만 따졌다기에는 형평성에 어긋난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영장 결과를 자정을 넘겨 낼 경우 주요 언론보도도 피할 수 있게 된다.

재경지법의 한 고위법관은 “서류 검토와 피의자 인상 확인을 거치면 사실 결론은 나온다”며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거나 자신의 결론이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될 때는 고심했다는 티를 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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