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현대차 등 국내 기업들은 디지털세(구글세) 도입에 대해 “아직 확정된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응방안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지만 물밑에서는 관련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기업은 해외매출 비중이 높은 특정 부서를 중심으로 디지털세 관련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한국경제연구원 및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기업이 지난해 벌어들인 매출의 65.9%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디지털세가 전격 도입될 경우 전체 매출의 3분의2가량이 영향을 받는 셈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아시아(43.7%), 미주(31.5%), 유럽(18.7%) 순으로, 향후 디지털세가 도입될 경우 한국 기업으로서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매출 기준 상위 63개 업체를 대상으로 산업군별 해외매출 의존도를 살펴보면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 전기전자 분야 매출의 82.6%가 해외에서 발생하며 기계(74.1%) 분야도 해외매출 의존도가 높다. 국내 상장사 기준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의 해외매출 비중은 지난해 97.9%를 기록했으며 LG디스플레이의 관련 비중도 93.5%에 달한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매출 비중이 86.1%, LG전자(066570)는 63.5% 수준이다. 자산 기준 국내 대기업 모두 디지털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자동차(62.0%)와 기아자동차(66.9%)도 해외매출 의존도가 높아 대비책 마련이 불가피해 보인다. 내수 중심 기업이던 CJ 또한 해외매출 비중이 2014년 19.4%에서 지난해 29%까지 급속히 늘어난데다 여론에 민감한 소비재 중심이어서 더욱 세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지난해 방한한 러셀 밀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산업자문위원회 사무총장은 “현대차의 자동차 소프트웨어가 여러 국가에 걸쳐 공급망이 형성되고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무형의 요소들이 훨씬 많은 부가가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각국별로 무형의 요소들에 대해 다른 세제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OECD는 오는 2020년까지 회원국들에 권고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전자업체 고위관계자는 “디지털세가 지금까지 내지 않은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국가별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 총량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향후 과세제도가 확정되면 결정에 따를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여러 대내외 상황을 고려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와 서비스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매출 기준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기준 100대 한국 기업 중 국내외 분류가 가능한 기업은 64개사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느 국가에서 얼마만큼의 매출이 발생했느냐가 과세 기준이 되는 만큼 국내 주요 기업 3곳 중 1곳은 디지털세를 도입할 경우 재무제표를 새로 작성해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40여개국이 국제회계기준(IFRS)을 채택한 반면 미국·일본·중국 등은 IFRS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어느 국가에 속한 기업이냐에 따라 해외매출 비중까지 달라질 수 있어 해외법인이 많은 기업일수록 현지 세무당국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구글세가 결국 세금 문제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 대응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특히 기업이 구글세에 대해 왈가왈부할 경우 불매운동 등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대응에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양철민·변수연·서종갑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