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요구에 법무부 화답?... "기자 오보 땐 검찰 출입 제한"

의견수렴 없이 공보기준 확정
檢 입맛대로 자의적 판단 가능
"언론 재갈물릴 독소조항" 비판

김오수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이 22일 오전 열린 국회 예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연합뉴스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 방지를 위해 새로 마련한 공보기준에 오보를 낸 언론사의 검찰청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는 조항을 의견수렴도 없이 확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오보 여부에 대해 자의적으로 판단할 길을 열어둠으로써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법무부가 공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훈령)’의 제33조 ‘오보 대응 및 필요한 조치’ 제2항에는 검찰총장이나 각급 검찰청의 장이 오보를 한 기자에게 검찰청 출입제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오보는 ‘사건관계인, 검사 또는 수사업무 종사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조항은 검찰이 입맛대로 명예나 사생활 침해 여부를 판단할 여지를 줌으로써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특히 판단의 주체를 기자단이 참여하는 위원회 등도 아닌 검찰총장과 검찰청의 장으로 규정한 것은 명백한 자의성을 부여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 조항은 앞서 국회 등을 통해 공개됐던 형사사건공개금지규정 초안에는 없었다는 점에서 비판이 거세다. 즉 법무부가 규정 최종안을 발표하면서 슬쩍 끼워 넣은 모양인 것이다. 이날 법무부 측은 보도자료에서 “검찰·법원·언론·대한변호사협회·경찰·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설명했으나 오보 시 출입 제한 조항에 대해서는 논의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셈이다.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도 “대한변협에 오보 언론사 출입 제한 관련 의견을 물어보지는 않았다”며 “그랬으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오보 낸 언론사가 미워 ‘출입하지 마라’ 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그걸 공식 규정에 담기로 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자들은 이번 규정이 공개되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법무부가 이 조항을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넣었는지 해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팀장급 기자들은 31일 긴급하게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법무부 측은 기존 공보 관련 법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도 오보나 추측성 보도를 한 기자에 대해 청사출입 제한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형사사건공개금지규정 마련 과정에서 초안에는 넣지 않았다가 최종안에 넣은 경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법무부가 여당의 눈치를 봐 이 조항을 삽입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7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도쿄지검은 특정 인물을 거명해 용의자로 표현하거나 앞으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하면 그 언론사의 출입을 정지시킨다”며 언론 보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한 방법을 마련하라고 검찰에 요구한 바 있다.
/조권형·윤경환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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