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 주도로 설립한 인공지능연구원(AIRI)이 판교테크노밸리를 떠난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설립돼 정권 교체 후 적폐 취급을 받으면서 당초 약속한 정부 지원마저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온 연구원이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AIRI는 이번 주말 경기 성남시 판교동에서 정자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 연구원 측은 “실제 이용하는 인력에 비해 판교 사무실이 넓어 비효율적이었다”며 “정자동에서 내실 있게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AIRI는 지난 2016년 8월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당시 구글의 AI ‘알파고’에 이세돌 9단이 패배하자 충격을 받은 정부가 설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기업이 30억원씩 설립 자금을 냈고 정부도 매년 최대 150억원 규모의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AIRI를 통해 선진국보다 10년 이상 늦은 AI 기술을 따라잡으려던 계획은 1년 뒤 정권이 바뀌면서 올스톱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연구원이 대기업의 출연금으로 조직된 점을 들어 AIRI에 대해 ‘제2의 미르·K스포츠재단’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의 예산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100~200명 연구인력을 모아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를 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밀집한 판교테크노밸리에 사무실을 마련했지만 현재 인력은 30여명에 그친다. 이에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판교에서 정자로 이전한 뒤 AI 연구개발에 매진하려는 행보로 분석된다.
정보기술(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와 IT 분야의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모여 있고 서로 네트워킹하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등 판교만의 장점이 있다”며 “그런 점에서 AIRI가 판교를 떠나는 건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