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이스북 등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인턴 연봉이 2억원입니다. 국내 대학교수 연봉이 1억원인데 인공지능(AI) 분야의 고급 인력이 한국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과 교수)
AI를 가르칠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대학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핵심 분야로 AI를 키우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정작 대학가에서 AI 분야에서 고급 인력을 길러낼 교수가 없다. 국내 주요 대학들이 AI대학원, AI 석박사 과정 개설에 나서고 있지만 10년째 동결된 등록금과 인건비 통제, 교수 겸직 제한 등 겹겹이 쌓인 규제로 교수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은 AI 교수 찾기 전쟁 중=정송 KAIST AI대학원장은 지난여름에만 세 차례 해외를 다녀왔다. 9월 개원할 AI대학원에서 AI를 가르칠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국·유럽 등에서 AI 관련 국제학회가 열릴 때마다 가서 교수로 영입할 인재를 찾았다. 정 원장은 “한국에서 AI를 해보자고 비전을 공유하고 설득한 끝에 미국 AI 기업에 근무한 연구원을 교수로 영입할 수 있었다”며 “이번 학기를 마치는 대로 또 해외에 나가 교수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연구환경에 우수 인프라를 갖춘 KAIST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다른 사립대들은 운조차 띄우기도 어렵다. 서울의 A사립대는 AI 분야 전문가를 앞세워 교수 채용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지인을 총동원하고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들을 수소문해 연락하고 있지만 선뜻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대학들이 급하게 AI 교수 찾기에 나선 것은 최근 유행처럼 AI대학 설립 열풍이 번지면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AI 업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AI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에 대학들이 기업체가 원하는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고급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관련 전공을 개설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정작 교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9월 AI대학원을 개원한 KAIST의 경우 전임 교원 10명 중 7명을 전산학과·전자공학과·산업공학과 교수로 채웠다. 내년에 AI대학원 정규 석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연세대 역시 10명 중 6명이 기존 컴퓨터학과 교수 출신이다. 정 원장은 “세계 최초로 머신러닝학과 석박사 과정을 개설한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전임 교수가 20명 정도 된다”며 “2~3년 내 교수 20명은 확보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보수·연구환경 차이에 한국 교수 ‘노(no)’=문제는 보수와 연구환경이다. 미국에서 AI 분야 박사학위를 딴 인재가 적어도 연봉 5억원가량을 받는 데 비해 한국 대학은 1억원대에 그친다. 10년째 동결된 등록금에 교직원 인건비도 제자리 수준인 국내 대학 사정을 고려할 때 AI 인재 영입은 ‘그림의 떡’이다.
홍대식 연세대 공과대학장은 “풀타임이 아닌 한국에서 몇개월 지정해 강의하고 같이 연구하는 형태로 구글에서 일하는 중국계 미국인을 어렵게 초빙했다”며 “(대학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외국에서 석학이라는 분을 채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창경 교수 역시 “서울대에도 전 세계 교수들이 오지 않으려고 하는데 다른 대학은 쉽겠느냐”며 “국립대학의 연봉체계, 반값 등록금 등으로 재정이 넉넉지 못한 사립대에서 ‘잘나가는’ 교수를 모셔올 수 없다”고 말했다.
교수가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고 관련 연구시설이 뒷받침되는 것도 관건이다. AI에 특화된 GPU 중심의 초고성능컴퓨팅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없다면 굳이 실리콘밸리를 놔두고 한국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보니 국내 대학 간 교수 뺏기 양상도 보이고 있다. 최근 2년 새 AI 분야 교수 3명이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KAIST로 이직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지방에서 어렵게 신진연구자를 키웠더니 중앙에서 데려간다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사립대 교수는 “지방 과기원에서도 대전, 서울 소재 대학으로 교수들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지방 대학은 교수 확보가 더 어려울 것”이라며 “지방에 AI 클러스터를 만들어도 우수 교원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