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관계 장관회의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유은혜 교육부 장관./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교육 공정성 강화를 목표로 추진 중인 정시 확대 및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이 교육 주요 주체들의 반발로 역풍을 맞으며 순항 가능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특히 입시 등 교육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방안을 학생·학부모들과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데다 해당 정책 핵심 관계자들의 의견조차 듣지 않은 채 서둘러 발표하면서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동이 걸리고 있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가 추진 중인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대해 17개 시도교육감으로 구성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패싱’한 채 진행하려다 발표 일정에 혼선을 빚고 있다. 당초 교육부는 이번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수도권 등 관련 시도교육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교육감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발표 시점을 연기했다. 교육부는 이 자리에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 국제고를 일괄 폐지하고 일반고의 역량을 끌어올릴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선 교육감들의 반발로 교육부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교육계는 중등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정책인데도 일부 교육감의 동의만 구한 채 교육감협의회와의 공식 조율을 거치지 않은 점을 발표 연기의 주요 배경으로 보고 있다. 교육감협의회는 발표 예정일 전날인 지난달 29일 교육부에 “4일 정기총회에서 고교서열화해소방안을 공식안건으로 다루고 싶다”며 해당 발표의 연기를 요청했다. 교육부가 해당 학교가 몰려 있는 수도권 교육감들과의 의견조율만을 거친 채 해당 방안을 발표하려다 시도교육감협의회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발표 시점을 잠정 연기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 셈이다.
또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오는 4일 예고된 정기총회에서 자체 대입 개편안도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감 대부분이 정부의 정시 추가 확대 방침에 반대하고 있어 협의회 차원의 대입 개편안 역시 정부 정책에 맞불을 놓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의 경우 대다수 교육감이 진보성향이어서 교육부 방침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전국 4년제 대학의 입학업무를 총괄하는 입학처장이나 본부장들로 구성된 전국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도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 상향에 대한 반대 의사를 공식화했다. 협의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해 공론화를 통해 2022학년도 수능 위주 전형(정시) 30% 이상 등이 권고된 상황에서 이를 시행해보기도 전에 정시 확대가 재논의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특히 수도권 주요 대학의 정시를 확대한다는 방안은 지역 간 대학 불균형을 심화하고 고교 교실 수업을 강화해온 2015 개정 교육과정 방향에도 역행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10여년 전 사례 때문에 공정성 확보를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자기소개서 폐지,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영역 미제공 등의 극단적인 방안은 대학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학종의 근간을 뒤흔든다”면서 “학종 취지에 맞게 자기소개서 반영은 대학 자율에 맡기고 학생부 비교과영역은 학생 선발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계 안팎에서는 학부모 등의 지지 여론과는 달리 성적 외의 다양한 비교과 영역을 종합 판단하는 학종이 문제 풀이 위주의 수능보다 평가에 적절하고 현 교육과정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관리 및 실행 주체들과의 협의 없이 여론에 따라 교육 정책을 급조할 때부터 파장은 예고된 셈”이라며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정책을 결정한 뒤 현장에 따를 것을 요구하니 반발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