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창]퇴직금과 월급이 비례하지 않는 세상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매년 한달치 급여만큼을 그것도 수십년간 저축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누군가 이 정도의 금액을 모아뒀다면 절대로 그냥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존 퇴직금 제도는 의무적이다 보니 강제 저축으로서의 장점은 있을지 모르나 근로자가 내 돈이라는 의식을 갖기는 어렵다. 2017년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중 찾아가지 않은 적립금이 무려 1,093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런 의식의 단편을 보여준다.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 제도는 적립금 운용을 근로자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하므로 주인의식이 희박해지는 것은 퇴직금 제도와 매한가지다. 어찌 됐든 회사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 규정된 퇴직급여를 지급할 책임을 진다.


문제는 점차 DC형 퇴직연금의 가입비중이 늘고 있으며 이 흐름은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DC형 퇴직연금 제도에서는 근로자 계좌에 매년 한달치 급여만큼을 입금해주는 순간 회사의 의무는 끝난다. 회사가 부담하는 적립금을 종잣돈으로 퇴직급여를 얼마나 불리느냐는 가입자인 근로자의 몫이다. 같은 시기에 입사해 똑같이 진급했지만 적립금을 얼마나 잘 운용했는지에 따라 동료 간에 몇 배의 퇴직급여 격차가 생길 수 있으며 만년 대리도 부장보다 훨씬 많은 퇴직급여를 받아갈 수 있는 것이 DC형이다. 한 퇴직연금 사업자의 데이터를 살펴보니 최근 1년간 전체 가입자의 평균 수익률은 4.6%지만 상위 5%에 속하는 가입자의 평균 수익률은 13.9%에 달했다. 매년 500만원을 퇴직계좌에 적립하는 두 명의 근로자가 있다고 하자. 매년 4.6%의 수익률을 낸 사람은 30년 후 퇴직할 때 약 3억2,000만원의 퇴직급여를 받는 데 반해 수익률 13.9%를 낸 사람은 약 19억9,000만원을 받게 된다. 똑같은 종잣돈으로 운용했지만 수익률 9.3%의 차이에 의해 퇴직급여가 6배 이상 차이 나 두 사람의 노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적립금 액수가 적다고 지레 포기할 이유도 없다. 매년 100만원씩 적립한 근로자가 현명하게 운용해 연 13.9%의 수익률을 낸다면 30년 후 퇴직급여로 3억9,000만원을 쥐게 된다. 연간 적립금이 500만원이나 되지만 연 수익률 4.6%밖에 못 올린 근로자가 받아가는 3억2,000만원보다 7,000만원이나 더 받게 된다. DC형이 DB형과 다른 점은 근무기간이 같더라도 퇴직급여가 급여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각자도생으로 변해가고 DC형 퇴직연금은 이 시류에 부합하는 제도다. DC형은 근로자가 자기 퇴직급여 액수를 정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근로자 스스로 퇴직급여가 내 돈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비록 종업원이지만 퇴직연금만큼은 내가 사장이라는 심정으로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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