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를 타는 정현정 기자의 모습. /정민수 기자
이 글은 한국야쿠르트의 배송망을 짧게나마 경험하고 쓰는 동행 취재기다. 전국에서 활동 중인 야쿠르트 아줌마는 1만 1,000여명, 보급 된 코코는 9,800대가 넘는다. 지난 2014년 처음 보급된 후 코코는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보는 이 전동카트에 대해 잘 모른다. (기자가 코코의 이름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듯이.) 익숙한 듯 낯선(?) 코코에 대해 다뤄보면 어떨까 싶었다.
기자가 매일 아침 출근길 마주치는 ‘코코’의 모습.
마침 지난달부터 한국야쿠르트는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하이프레시’라는 마켓 앱을 출시하고,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비공식 명칭 대신 ‘프레시 매니저’라는 이름도 만들었다. 전국에 구축된 배송 망을 활용하기 위해 판매 항목도 212개로 늘렸다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다만 진짜 야쿠르트 아줌마처럼 ‘혼자’ 배달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평범한 야쿠르트 아주머니와는 조금 다른 분을 만나보기로 했다.
■ 나보다 어린 야쿠르트 아줌마가 있다니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지난주 목요일 오전 8시 선릉역 3번 출구. 26살의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났다. 그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기자에게 언니라고 불러도 되는지 물었다. 길에서 흔히 마주하던 야쿠르트 ‘여사님’들이 익숙한 탓인지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언니 소리를 들으니 괜히 신기했다. 하지만 야쿠르트 아주머니 특유의 친화력과 넉살은 그대로였다. 처음 만난 기자에게 요즘 잘 나가는 제품이라며 샘플을 권하고, 손님에게 방금 받았다는 인삼 경단을 나눠줬다.
하루동안 기자의 선배가 되어준 김지윤(가명·26) 프레시 매니저.
단골 손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인삼 경단. 기자가 올해 먹은 것 중에 제일 썼다.
하루 동안 기자의 선배가 되어준 김지윤(가명·26) 매니저는 서울 강남구에서 활동 중인 프레시 매니저 중 한 명이다. 선릉역 일대의 빌딩과 아파트 단지를 담당한다. 근무한 지는 이제 반 년 됐다. 한국 야쿠르트 측에 따르면 현재 활동 중인 20대 프레시 매니저는 지윤 씨 말고도 꽤 있다. 스스로 정한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수수료를 받는 구조이다 보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의 지원이 늘었다.
“알바몬에서 야쿠르트 아줌마 모집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지윤 씨도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프레시 매니저를 시작했다. 그의 원래 꿈은 쇼 호스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들어야 하는 수업이 많은데, 수업이 전부 오후에 있다 보니 오전만 활용해 할 수 있는 일을 원했다. 때마침 올라온 ‘야쿠르트 아줌마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말로 설득해 판매한다는 쇼 호스트와의 접점도 일을 시작한 계기였다.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오래된 직업에도 시대의 변화가 반영된 셈이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야쿠르트가 제품 전달업을 시작한 건 1971년이다. ‘경력 단절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모토 아래 야쿠르트 아줌마 47명이 서울 일부 지역에서 판매한 게 시초였다. 그는 “주부 사업이 모태인 만큼 오랜 기간 야쿠르트 아줌마의 대부분이 기혼자였다”며 “사회상이 변하면서 결혼하지 않은 40대 ·50대 분들이 늘고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생겼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남자 야쿠르트 아줌마(?)’는 없지만,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빨대 넣고 빨대 빼, 비닐에 넣어, 비닐에 넣지 말고 파우치 넣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유니폼을 착용했다. 색깔은 익숙한 베이지색이었다. 포인트 색깔은 하늘색이었는데, 신선한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이번에 바꿨다고 했다. 겨울용 유니폼은 남는 재고가 없어 가을용을 입었다. 바지와 상의 외에도 바람막이, 패딩 조끼로 이뤄져 있어 생각보다 따뜻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급한 와중에 ‘거울컷’을 하나 찍었다. 이 땐 기자도 몰랐다. 이 사진이 이 날의 유일한 사진이 될 줄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프레시 매니저는 이미 건물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양손에는 유제품이 한 가득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하나를 얼른 나눠 들고 건물 안으로 향했다.
요구르트가 든 봉지를 들고 따라다니기만 했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생각보다 들려야 하는 층도 많았고 고객의 요청 사항도 다양했다. 빨대를 꼭 함께 달라는 고객이 있는 반면 빨대를 원하지 않는 고객도 있었다. 자리까지 제품을 배달받길 원하는 경우도 있고, 비닐에 아이스팩을 함께 넣어 문 앞에 걸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따로 마련된 공간에 비치된 파우치 안에 제품을 넣어서 전달해야 하기도 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품을 딱딱 꺼내 전달하는 매니저의 손놀림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계단을 타는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얼마 못 가 금방 숨이 차올랐다.
매니저가 들고 다니는 고객 기록표. 코팅을 했지만 매일 들고 다니다보니 물기가 스며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11층과 6층에서는 영업 업무를 할 거예요.”
배달이 반 정도 끝났을 때 드디어 업무다운 업무가 주어졌다. 새로운 고객을 영업하기 위한 브로슈어와 샘플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자리마다 옮겨 다니며 “안녕하세요. 한국 야쿠르트입니다”라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혹시 제품에 대해 물어볼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명 “저 안 시켰는데요.”라며 눈치를 주는 사람이 있긴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저희가 이번 달에 행사 기간이어서 샘플 나눠드리는 거예요! 브로슈어 한 번 보시고 꼭 주문해주세요.”라고 멘트를 날렸다. 위기를 잘 넘긴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첫 번째 배달이 어느덧 끝나 있었다. 소요된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어떻게 헷갈리지 않고 그렇게 빨리 전달하느냐”고 존경 섞인 질문을 내뱉자 매니저는 완벽하게 적응하는 데는 그래도 3개월 넘게 걸렸다고 답했다. 처음엔 고객이 출장을 간 사실을 까먹거나 맡은 구역의 수요를 파악하지 못해 남게 된 재고를 울며 겨자 먹기로 12개씩 먹은 적도 있다며 ‘웃픈’ 에피소드를 전했다.
사무실 책상에 놓아둔 영업용 브로슈어와 샘플. 혹시나 제품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할까봐 조마조마했다.
■ 코코의 최고 시속은 8km…인도주행? 도로주행? 법 개정은 ‘아직’
이후 주변 오피스텔 건물을 돌며 배달을 이어갔다. 건물 간 이동은 당연히 코코로 했다. 1인 탑승이 원칙이라 보조 배달원인 기자는 걷고 뛰어야 했다. 코코는 속도를 시속 4km·시속 8km 두 가지로만 조절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프레시 매니저는 시속 8km로 운전한다. 뛰면 사람이 빠르지만 걸어서 따라잡기엔 벅찬 속도다. 시속 8km로 이동하는 코코를 5분 넘게 따라가려니 확실히 힘들었다. 한국 야쿠르트에 따르면 코코가 보급 된 후 전체 매출은 △2015년 9371억원 △2016년 9805억원 △2017년 1조314억원 △2018년 1조357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기동력이 높아지면서다.
코코는 현행법상 오토바이처럼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된다. 운전자는 면허가 있어야 하고 인도나 자전거도로가 아닌 차도로만 주행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 속력이 사람의 달리기보다도 느리다 보니 차도로 달릴 때가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아파트 단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차들이 뒤에서 빵빵거리고, 가까이 따라붙기도 했다.
인도라고 안전해 보이진 않았다. 마침 등하교 시간과 겹쳐 아파트 단지 앞 인도가 학생들로 붐볐는데, 인도에서 카트를 끌지 않고 탈 경우 보행자와 충돌 사고가 날 수 있겠다 싶었다. 코코가 도입된 지 벌써 6년째지만 코코·전동킥보드 등 25km/h 이하 속도를 가진 퍼스널 모빌리티의 ‘자전거도로 주행 허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동 판매(카트를 한 곳에 정차해놓고 유동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판매) 중 단골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배달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매번 들리는 고객도 많다고 한다.
■ 드디어 코코를 탔다?!... 운전면허 있는 동기가
코코에 설치된 사이드 미러는 앞쪽 좌측에 하나다. 뒤쪽 아래엔 양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발판이 있고, 위엔 양손으로 잡는 핸들이 달렸다. 중립·기어·후진은 핸들 중앙에 위치한 버튼으로 간단히 조작하면 되고, 왼쪽 핸들은 브레이크, 오른쪽 핸들은 엑셀로 쓰인다. 배터리는 생각보다 오래가는 편이었다. 완충 시 하루 반만큼 운행이 가능한 정도다.
코코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코코는 사실 ‘탈 것’이 아니었다. 2014년 개발 당시만 해도 냉장고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기존엔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어 신선도를 유지했는데 매번 얼음 얼리기가 번거로웠다. 그런데 전기 배터리가 탑재된 냉장고를 만들고 보니, 배터리 용량을 좀 더 키우면 타고 다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결국 골프카트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대창 모터스와 협업해 지금의 전동카트 코코가 탄생했다.
코코는 서랍장이 위쪽 3개, 아래쪽 1개로 분리되어 있다. 위쪽에 유제품을 싣고, 아래 칸에 김치·삼겹살·간편식 등 부피가 큰 식품을 보관한다.
코코의 용량은 220L로 180원짜리 요구르트가 무려 3,300개 들어가는 크기다. 한 대당 가격은 800만원. 코코를 이용할 경우 프레시 매니저는 한 달에 4만원 남짓한 사용료만 부담한다. 개인이 구매하는 게 아닌 만큼 프레시 매니저가 그만 두면 다음 매니저가 코코를 물려받는 구조다. 이때 물려받는 건 코코 뿐만이 아니다. 기존 매니저가 맡았던 구역, 즉 망까지 물려받는다.
최근 한국야쿠르트에서는 전국적으로 생성된 이 ‘망’을 어떻게 이용해나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농협·본죽·메디힐 등 타 브랜드와 협업해 유통 상품을 다변화하고, 새로운 수요에 발맞춰 온라인 몰과 앱을 통한 O2O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고민의 결과다.
하루 동안 현장을 체험해본 결과 아직까진 기존 한국야쿠르트 제품을 찾는 고객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새롭게 앱을 출시한 사실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김지윤 매니저는 “앱 설치를 권해도 귀찮다며 거절하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다양한 제품군으로 늘린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은 망을 구축해 나가는 워밍업 단계”라며 “새로운 플랫폼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꾸준히 변화를 이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민수기자 minsoo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