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법령 위반 우려가 있거나 주주제안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중점관리 대상 상장기업에 정관변경과 이사 해임까지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국민연금이 상당수 대기업의 최대주주 또는 2·3대 주주인 상황에서 정관변경을 통한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보편화할 수도 있어 국민연금의 경영개입 본격화에 대한 기업의 우려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12일 공개한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및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부는 기업의 배당정책, 임원 보수 한도의 적정성, 정관변경,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등 중점관리 사안에 대해 주주제안을 행사할 수 있게 추진할 방침이다. 법령상 위반 우려가 있는 기업에는 이사의 횡령·배임 등 유죄가 확정될 경우 상법에 따라 이사 자격을 박탈하는 ‘이사 자격’ 조항을 정관에 넣으라고 요구하는 한편 특정인을 사외이사나 감사로 선임하도록 요구한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연금 사회주의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기업과 대화 등을 추진했음에도 개선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거쳐 기금운용위원회가 주주제안 여부 및 내용을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화 후 안건이 수용되지 않으면 주주제안을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기업 입장에서 강제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100% 옳다고 볼 수 없는데 경영상 손해를 본다면 책임은 누가 지느냐”며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면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지분 대량보유 공시 의무(5%룰) 완화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이어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가 강화되면 노동이사제 등으로 기업 경영에 노골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법률이 아니라 연성 규범 형태인 가이드라인으로 규제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관변경은 경영상 중요한 요소인데 올 초 대한항공 사례처럼 기업활동을 정상적으로 하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한편 국민연금공단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가이드라인에 대해 13일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이후 실무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달 말 기금운용위에서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심의·의결한다. 양성일 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일각에서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다고 문제를 제기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업과의 대화에 중점을 두고 개선되지 않을 때만 제한적으로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백주연·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