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과 관련해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두고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인 사건으로 고발된 지 200여일 만에 검찰에 출석했다. 나 원내대표는 폭력 사태에 대해 불법 사보임을 통한 패스트트랙을 지정을 막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지만 검찰 수사를 앞둔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는 두려움이 싹트고 있다. 검찰이 수사 칼날을 크게 휘둘러 현직 의원들이 법원으로 향할 경우 내년 총선의 공천을 받는 데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여권은 보란 듯이 “국회 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엄정 수사를 요청했다.
나 원내대표는 13일 오후2시께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했다. 나 원내대표는 “공수처와 비례대표제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여권의 무도함에 대해 역사가 똑똑히 기억하고 심판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를 저와 한국당이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면서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4월 여권이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3개의 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면서 벌어졌다. 당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이던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려 하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사개특위 위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를 허가했다. 국회법 48조 6항에는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을 경우”로 위원 교체를 한정했다. 한국당은 위원 교체를 불법 사보임으로 보고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여권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현직 의원 약 110명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등으로 고발당했다.
나 원내대표는 폭력사태를 불법 사보임을 막기 위한 정당방위로 주장하고 있다. 오후 10시 30분께 조사를 마치고 나온 그는 “한국당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며 “여권의 불법적인 상황은 소상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폭력을 뿌리 뽑을 마지막 기회라는 다짐으로 철저히 수사하라”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검찰도 청와대와 여권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와 척을 지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가족의 비리 혐의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칼이 한국당을 향할 것이라는 관측도 이 때문이다. 강한 수사가 들어오면 한국당의 속내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우선 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다음달 만료되는데 연임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이 과정에서 고발된 한국당 의원 60명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돼 기소되면 여론이 악화해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내년 총선을 위한 공천 경쟁에서 불리해지는 구도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검찰의 수사 방향에 따라 의원들의 공천이 좌우되는 이른바 ‘윤석열발(發) 공천’ 우려도 나온다. 의원들이 줄소환되면 당연히 12월3일 상정이 예고된 패스트트랙 3법의 통과를 저지할 한국당의 단합력도 약화된다. 정치적으로도 끌려다니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구도다.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으로 흐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원은 없다고 본다”며 “수사가 빨라지면 결국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저지보다 각자도생을 위해 뛰게 되고, 정국도 끌려다니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