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프로야구 시즌이 끝났다. 일년 동안 선수들은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그라운드에 쏟아부었고, 모든 일이 그렇듯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우승팀이 가려졌다. 결과를 보면 리그 우승이 팀에 투자된 돈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특정 스타 선수의 능력이 팀 전체의 성적과 같지 않다는 것도 확인된다. 최근에는 데이터 야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수년 동안 축적된 선수들의 루틴·특성 등을 분석해 약점을 파고들고 강점을 부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한미일 우승팀의 특징을 꼽아 보면, 꼭 데이터에 의존한 야구가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확인된다. 다시 한번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둔 ‘믿음의 야구’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결과를 보였다.
2020년 경제와 투자시장을 앞두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특히 주식시장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주식시장은 2017년까지, 한국 경제는 2018년까지 호황기를 누렸다. 코스피 지수는 2,600포인트를 웃돌았고, 수출은 지난해 사상 최대 금액을 기록하며 확장 국면을 이어갔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2년째 침체되자 투자자는 국내 투자자산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경제전망 자체도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전망’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코노미스트와 전략가들은 데이터에 의존한다. 보다 객관적 전망 근거를 찾기 위해 얼마 되지 않은 거시 데이터뿐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전후의 데이터를 활용해 앞으로 경제와 투자시장의 변화를 예상해보려고 한다. 문제는 최근의 데이터를 기초로 한 전망을 한다면 일반적 투자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에 그친다는 점이다. 이것은 데이터 중심의 예측에 함정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전통 경제학은 사회의 경제활동이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에 의한 수요와 공급으로 균형가격이 결정돼 생산과 소비활동이 정해진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와 경제활동은 이성적 판단을 제한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제와 투자환경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축적된 데이터뿐 아니라 조금 더 방대한 자료의 탐구와 분석을 거쳐 경제활동인구의 시선 이동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 때다.
한국 경제와 투자시장이 현재의 침체된 국면을 벗어나 전환점을 찾기 위해서는 대외환경의 변화를 읽으려 하는 피동적 자세에서 탈피해 자의적이며, 능동적 자세로 변화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현재 국제 정세는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며, 바뀐 환경 속에 스스로의 경쟁력과 독립성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 경제와 투자시장이 성장을 이끌어내고 투자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환경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본능과 투쟁심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성장 유전자(DNA)에는 패스트팔로워의 본능이 있다. 퍼스트무버로서의 자긍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남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과거의 ‘추격본능’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해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