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낮은 시장성과 기술력에도 ‘묻지마 D램 양산’을 통한 반도체 자립에 나선다. 국내 기업들이 초미세 공정 투자에 따른 부담을 호소하는 가운데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 업체의 맹추격에 공정을 포함한 D램 기술격차가 10년에서 5년까지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D램 시장의 4분의3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로서는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조성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국 업체의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14일 디지타임스 등에 따르면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19나노(1㎚=10억분의1m) 기반의 D램 공정 수준 향상으로 내년에는 월 웨이퍼 4만장 규모의 반도체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CXMT는 올 9월부터 D램 양산을 시작했으며 현재 월간 기준 웨이퍼 2만장 규모의 반도체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CXMT는 D램 샘플을 각 업체에 보내며 고객사를 모집 중이며 올해 말께 19나노 D램으로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CXMT는 19나노 기반의 D램을 서버나 모바일 기기 대비 적용이 까다롭지 않은 PC용에 우선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CXMT는 3년 전부터 중국 지방정부의 지원을 통해 D램 개발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총 550억위안(약 9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도입 예정인 극자외선(EUV) 공정까지 손을 뻗쳐 기술격차를 좁힌다는 계획이다. 핑얼슈안 CXMT 부사장 겸 기술책임자는 지난 9월 “올해 말까지 20나노미터 이하 공정을 통해 8Gb DDR4를 양산할 것이며 EUV 공정 개발을 위해 외국 업체와도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CXMT의 D램 제품이 시장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이제까지 중국의 선두 사업자 추격 사례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CXMT가 중국 허페이시 등 지방정부의 도움으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의 일부 중국 업체처럼 수익과 상관없이 투자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미국의 무역제재 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자립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 소유로 알려진 칭화유니 또한 향후 10년간 D램 생산 등을 위해 8,000억위안(약 13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오는 2021년부터 D램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올해 한국의 반도체 장비 투자액(92억달러)이 중국(117억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내년에는 한국(117억달러)과 중국(145억달러) 간 투자액 차이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산 D램은 해외 시장에서 품질 문제로 외면받을 수밖에 없지만 중국 내수용 제품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화웨이나 오포 같은 스마트폰 업체들이 조악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덩치를 키운 후 글로벌 시장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과 비슷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중 간 반도체 기술격차가 좁혀졌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삼성전자가 2016년 2월 1세대 10나노급(1x) 8Gb DDR4 양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CXMT가 내년께 19나노 기반의 반도체를 양산할 경우 기술 격차는 단순 비교시 5년 이내로 좁혀지기 때문이다. 10나노급 D램 공정은 미세화 정도에 따라 1세대(1x), 2세대(1y), 3세대(1z)로 나뉘며 삼성전자의 현재 D램 주력은 1y 제품이라는 점에서 기술 격차가 3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율을 비롯해 기술력 및 원가 경쟁력 등 모든 요인이 중국 대비 압도적이기는 하지만 반도체 공정이 나노급 단위로 진행되며 공정 미세화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격차 확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익 내 재투자하는 일반적인 산업 싸이클이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업체에는 적용되지 않는 모습”이라며 “반도체 관련 기술 유출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어 현재의 기술 및 생산성 우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