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처방전에 ‘잔탁’ 대신 ‘라니티딘’이 쓰여 있다면?

이주원 바이오IT부


처방전에 제품명 대신 성분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지금처럼 의약품을 ‘잔탁’이나 ‘타이레놀’과 같이 특정 제품명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라니티딘’이나 ‘아세트아미노펜’ 등 성분명으로 처방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환자는 성분명만 기재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 해당 성분의 여러 의약품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해묵은 논쟁이다. 이미 2007년 정부에서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벌인 적이 있는데 이때도 의사와 약사 간 첨예한 대립구도가 조성됐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또 얘기가 나온다.


성분명 처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주로 약사들이다. 이번에는 발암 우려 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면서 판매 중지된 ‘라니티딘’이 계기가 됐다. 대한약사회는 12일 심포지엄을 열고 현재 라니티딘 처방 환자들이 대체 약으로 재처방을 받아야 하지만 복용 중인 약이 라니티딘인지 몰라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근 라니티딘 의약품을 처방받은 환자 중 약 6%만 재처방을 받았다는 것이 약사회의 설명이다. 실제 국내 라니티딘 의약품은 269개에 달해 소비자가 이를 다 알기는 쉽지 않다. 성분명으로 처방하면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을 값싼 복제약으로 대체 조제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는 만큼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의무화가 맞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의사들은 성분이 같다고 해서 효과도 100% 같은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혈중 약물 농도가 오리지널 약 대비 80%만 돼도 복제약으로 허가받을 수 있다. 사람마다 혈중 흡수량과 흡수 패턴이 달라 같은 성분이라도 약효가 같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또 성분만 보고 매번 약국에서 다른 약을 처방받으면 약 복용의 일관성도 떨어진다.

양 측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다만 환자의 득실을 따지는 진지한 자세는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다. 성분명 처방이 의무화되면 약사들의 권한은 자연스레 강화된다. 이 때문에 약사들은 이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의사들은 반대한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보겠다는 입장이지만 당분간은 또다시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밥그릇 싸움을 넘어 실제로 환자들에게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의 논의가 시급하다.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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