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머리고지 찾은 이총리 "최후의 한분까지 모시는 게 후대 도리"

"군사분계선 넘어 유해 함께 발굴하는 날도 올 것"
6월 유해 발굴 장병 오찬 당시 현장방문 요청 수용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 둘러보고 장병 격려

이낙연 국무총리가 15일 오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내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해 발굴된 유해에 헌화하고 있다./연합뉴스

“호국 영령께 대하여 경례”

15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 일행은 현장에 하얀 국화를 한 송이씩 올린 후 3초 동안 묵념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66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낯선 땅에서 백골이 된 군인의 유해 앞에서는 평소 달변가로 불리는 이 총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현장 관계자는 유해의 가슴 부분에서 발견 된 군번 줄이 유해의 주인이 국군임을 알려줬다고 이 총리에게 설명했다. 전투화 바닥 무늬도 그가 아군 임을 알려주는 단서라고 말했다.

잠시 후 이 총리는 “비나 눈이 쌓이면 어떻게 모십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일과 후 복귀하기 전에 비닐을 덮어서 백화를 막는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신원이 확인 되지 않은 유해는 어떻게 모시는 지’도 질문했다. 허 단장은 “유해보관시설 유해 중성집합소에 모신다”고 다시 답했다.

15일 오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 앞에 국화가 놓여있다./연합뉴스

국군 200명, 유엔군 100명 전사한 격전지

이 총리의 이날 화살머리고지 방문은 지난 6월 1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과의 오찬에서 현장을 방문해 달라는 장병들의 건의를 이 총리가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화살머리고지는 6.25 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철의 삼각지’ 전투지역 중 한 곳이다.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국군 2사단, 국군 9사단, 미군 2사단, 프랑스대대와 중공군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당시 이곳에서만 국군 200여 명이 전사했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군과 프랑스군도 100여 명이 전사했다. 북한군과 중공군은 3,000여 명이 사망했다.

화살머리고지는 지난해 남북군사당국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최초로 남북공동유해발굴 지역으로 선정됐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DMZ 화살머리고지 일대 유해발굴 작업 과정에서 현재까지 유해 1,937점, 유품 약 5만 2,000여 점 등이 발굴됐다.

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으로 지난 달 4일부터 유해 발굴 작업이 잠정 중지됐다가 이달 초 재개됐다. 하지만 땅이 얼어붙는 12월부터는 다시 내년 봄까지 발굴 작업이 중단 된다. 요즘 현장의 장병들이 발굴 작업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15일 오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내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장병들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국가 위해 희생한 분들 모시는 게 후대 도리”

이 총리는 현장에서 유해발굴감식단과 5사단 장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전했다.

이 총리는 “여름에 발굴 현장에 와보겠다고 약속했는데 많이 늦어졌다”며 “여기 와보니 이제야 머릿속에 그림이 들어오고, 작업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다.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리는 “최후의 한 분까지라도 모시는 게 후대의 도리”라며 “생명을 걸고 지키신 나라에서 태어나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후대들의 도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이 총리는 “한반도 상황이 변화하면 군사분계선을 넘어 유해를 함께 발굴하는 날이 올 것”이라며 “미국, 프랑스 할 것 없이 공동작업과 발굴, 확인, 송환까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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