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0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입법을 두고 정부 측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영자 측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여전한 입장 차를 드러냈다.
2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정책간담회’에서 김 실장은 “탄력근로제 입법을 위한 경총의 역할을 부탁”했지만 손 회장은 “주 52시간제 같은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들이 사업하는 길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두고 정부와 경영계가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다.
김 실장의 경총 방문은 이번이 2번째다. 앞서 김 실장은 지난해 12월21일 공정위원장으로서는 49년 만에 처음으로 경총을 방문했다. 이날 경총을 만난 김 실장은 “내년부터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산하는데 원만한 정착을 위해서는 탄력근로제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난항을 겪고 있다”며 “그제 계도기간 부여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보완책을 발표했지만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국회 입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총이 국회 입법을 위해 힘써줄 것을 부탁했다. 김 실장은 “조속한 타결을 위해 좀 더 노력해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린다”며 “현실적인 대안 조치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김 실장이 경총을 방문한 이유는 국회에서 꼬여버린 탄력근로제 입법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현재 국회에서는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입법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지난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회의가 열려 이 문제를 집중 논의했지만 여야는 입장 차만 확인했다. 자유한국당은 선택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제 확대 방안을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하면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시행 6개월 연장안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버티고 있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시한 6개월 연장 안 외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경영계를, 더불어민주당이 노동계를 대변하는 양상이다. 김 실장의 이날 경총 방문은 경영계를 직접 설득해 자유한국당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손 회장은 “주52시간제 같은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며 “정부가 보완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의 기대에는 부족한 수준이다”고 말해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기 어렵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물론 선택적 근로시간제, 특별연장근로 같은 보완조치가 반드시 함께 이뤄지도록 힘써 주시길 요청드린다”며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법으로 시행시기를 1년 이상 늦춰 주는 입법 조치도 추진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양측의 입장 차는 연구개발(R&D) 예산을 두고도 차이가 났다. 손 회장은 기업이 체감할 정도의 투자를 요청했지만 김 실장은 계획에 따라 4차 산업혁명 투자를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경총이 경제전문가에게 우선적으로 재정 투입이 필요한 분야를 묻자 응답자의 48%가 R&D 등 혁신성장이라고 답했다”며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신기술과 신산업이 자라날 수 있도록 혁신성장에 전폭적인 지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 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을 지원하고 역대 최고 수준의 R&D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며 “AI, 수소경제 등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충분히 R&D에 투자하고 있다”지만 경영계는 “아직 멀었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이 외에 김 실장은 최근 출범한 2기 노사정위원회에 경총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실장은 “2기 노사정위에서 노사 상생과 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며 “경총이 양극화 해소 등 의제에 대해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힘을 보태 달라”고 말했다. 또 김 실장은 ‘공정과 포용’, ‘노동존중 사회’ 등 문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기업 경영을 제약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기업이 부담을 느낀다”며 “최근 정부가 기업 부담을 가중하는 하위법령 개정과 국민연금을 통한 경영권 행사 확대까지 추진해 기업의 불안감이 커진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법인세율을 낮추고 투자세액공제제도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 김 실장과 손 회장은 19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 대한 담소를 나눴다. 손 회장은 “(문 대통령이) 뭘 많이 아시더라고요”라고 평했고 김 실장은 “사실 참모보다 많이 아신다”고 답했다. 또 김 실장은 “어제 1만6,000여장에 달하는 질문지를 받았는데 저희가 다 답을 해야 한다”고 말하니 손 회장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며 격려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