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가들이 국내 증시에서 올 들어 두 번째로 긴 ‘팔자’ 행진에 나서며 지수를 억누르고 있다. 이달 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의 리밸런싱에 따른 기계적인 매도로 시작된 외국인의 매도세는 미중 무역협상과 홍콩 시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옅어지지 않자 더욱 거세지는 모습이다. 외국인들은 주로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 등 대형주를 팔아치우고 카카오(035720)와 F&F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30%(27.92포인트) 내린 2,125.32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각각 3,343억원, 985억원어치를 대거 팔면서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특히 외국인들은 지난 7일 이후 10거래일 연속으로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이 기간 외국인들은 1조3,543억원 이상을 팔아치웠다. 7월31일에서 8월19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순매도로 2조원 이상을 순매도한 후 올 들어 두 번째로 긴 매도행진을 벌이고 있다.
증권가는 최근 외국인 매도세가 국내 증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원인이 한꺼번에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작은 8일 MSCI가 신흥국(EM) 지수를 재조정하면서 한국 주식 비중을 낮추기로 하면서부터다. MSCI는 EM 지수 내 중국 A주 비중을 확대한 데 이어 A주 중형주 편입 숫자를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 때문에 EM 지수 내 한국 비중은 0.3~0.4%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글로벌 자금이 한국 증시에서 기계적으로 빼야 하는 상황과 맞물려 미중 무역협상이 확실한 진척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외국인들이 ‘팔자’ 대열에 합류하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10월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던 이날 증시에서는 오전 미국 상원이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인권법을 통과시킨 후 중국 정부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미중 무역협상 타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에 장 중반 2,120포인트 선까지 위협할 정도로 뒤로 밀리기도 했다. 아울러 미중 무역협상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중국 위안화 등 신흥국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20일 코스피 지수 하락은 미 상원 인권법 통과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인권법 통과는 미중 무역협상에 부정적이며 주식시장에도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외국인들이 그동안 국내 증시를 이끌어왔던 대형주를 내다 팔면서 차익실현에 나선 것도 매도세가 거세진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순매도 행진을 이어온 기간 외국인들은 대형주만 7,848억원어치를 팔았고 그중에서도 그동안 꾸준히 사모았던 삼성전자를 가장 많이 내다 팔았다. 삼성전자 순매도 금액은 3,828억원에 달하며 이외에도 셀트리온(068270)(1,512억원), 삼성전자우(005935)(1,160억원), KT&G(033780)(940억원), 현대차(873억원) 등 순매도 종목 상위에 대형 우량주들이 포진해 있다. 반면 카카오·F&F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종목의 매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이 때문에 카카오의 외국인 지분율은 이 기간 30%를 넘어섰고 외국인 지분율이 10% 이하였던 F&F는 최근 13.18%까지 늘었다.
당분간 외국인 매도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MSCI EM 지수 리밸런싱이 적용되는 오는 25~27일 사흘간 5,000억원 이상의 외국인 순매도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MSCI의 EM 지수 리밸런싱과 불확실한 미중 무역협상 타결 전망이 맞물려 글로벌 패시브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미중 무역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높고 4·4분기 기업 수출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돼 국내 증시에 오랫동안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