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넘긴 황교안, ‘선거법’ 전쟁이 시작된다

27일 선거법·내달 3일 공수처법 부의
국회의장 재량 따라 본회의 상정 가능
정당지지율로 비례대표 갖는 선거법
군소정당과 연합 통한 합종연횡 우려
지역 중심 정당 생겨 최악 땐 당 분열
공수처, 칼날 결국 야권 향할 두려움
野 “패스트트랙 저지·관리 가장 중요”

황교안 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하며 명상에 잠겨있다./연합뉴스

정치권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소용돌이에 들어간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0일 단식에 돌입하며 내걸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직선거법 개정 포기 △고위공직자버죄수사처 철회 등을 내걸었다. 지소미아는 조건부 연장됐다. 여야는 이제 패스트트랙 3법에 포함된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두고 명운을 건 혈투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선거법을 막지 못하면 군소정당이 야합하는 전국시대가 벌어질 수 있어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지정 때 폭력사태까지 불거진 국회 파행이 다시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3법 가운데 선거법 개정안은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다. 공수처법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다음 달 3일 부의를 예고했다. 두 법 모두 부의 후 최장 60일간 논의를 거쳐 자동 상정된다. 하지만 국회의장의 재량에 따라 논의 과정이 생략될 수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밀어붙여 표 대결로 법이 통과될 여지도 있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두 법의 파괴력이 두렵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법이 문제다. 선거법 개정안은 현재 253석인 지역구 의석을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여야의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로 지역구 의석을 240~250석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지역구가 줄고 비례대표가 늘어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과 관련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무엇보다 비례대표를 정당별 지지율을 따져 정하는 규칙이 무섭다. 새 선거법에서 비례대표를 뽑는 과정은 복잡하다. 각 정당이 의원총수(300석) 중에서 정당득표율을 곱한 후 지역구 의석을 뺀다. 다시 여기에 50% 곱해 비례의석을 가져간다.


예를 들어 한국당의 선거에서 지역구 100석을 얻었다. 정당득표율은 40%다. 120석. 여기에 지역구 100석을 빼면 20석이다. 이에 50%, 10석이 비례의석이 돼 총 110석을 가져간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30%·90석)이 지역구 의석(100석)보다 낮으면 비례의석이 없다. 이 때문에 새 선거법은 두 정당이 연합하면 한 정당이 지역구를, 다른 정당은 지지율을 얻어 비례의석을 많이 가져가는 선거 활동이 가능하다.

더 큰 혼란이 있다. 이 같은 선거법이 넘어가면 한국당 내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신당을 만드는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지역 정당은 지역구의석 없이 정당지지율 10%만 확보해도 의석 30석을 가져간다. 이에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야합할 수 있다”며 비례대표를 없애고 지역구 270석으로 선거법을 바꾸자고 역제안을 하고 있다.

다음 달 3일 부의되는 공수처법은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한다지만 야당 내에서는 검찰 수뇌부는 물론 정적인 야당에 칼을 겨눌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있다. 야당은 공수처가 수사권은 갖되 법원 재판에 올리는 기소권은 제한하는 안을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추진 의사가 워낙 확고해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 가진 채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한국당이 막을 방안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재적의원 총수 295석 가운데 148석을 넘기면 법안이 통과된다. 한국당은 108석, 통합을 논의하는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은 15석에 불과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129석, 정의당은 6석, 대안신당은 10석, 민주평화당은 5석으로 범여권이 150석에 달한다. 심지어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지정 때 발생한 국회 폭력사태로 한국당 의원 60명이 무더기로 고발된 상황이라 물리적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다. 법원에서 형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국회선진화법을 어겨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공직선거법에 따라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검찰 조사가 시작된 마당에 다시 국회에서 물리력을 행사했다간 의원직이 위태로울 수 있다.

황 대표의 무기한 단식도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했을 때 여론의 역풍을 기대한 결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한국당 의원은 “의원인 나도 모르고 국민도 모르는 선거법을 도대체 깜깜이로 밀어붙이는 것이 선진국인 한국에서 일어나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한 중진의원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공수처의 칼이 누구에게 더 많이 향하겠느냐”라고 꼬집었다.

한국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정국을 헤쳐나갈 묘안을 찾고 있다. 이날 오전 방미에서 돌아온 나경원 원내대표가 단식 현장에 찾아오자 황 대표가 황 대표는 “사실 (단식의) 시작은 선거법 개정안 때문이었다”며 “잘 싸워봅시다”라고 강조했다. 한 한국당 재선의원은 “당에 가장 중요한 일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어떻게 저지할 지와 이후의 정국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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