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들은 하루 평균 40분 ‘농땡이’ 치는데, 왜 나는 쥐어짜며 일해야 해?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 공간인 ‘회사’에서 누구는 쉴 수 있고, 누구는 안 된다면? 과거 자연스럽게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았던 흡연이 주52시간제 도입과 더불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비흡연자들을 중심으로 “나는 일하는데 그들은 왜 흡연을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가”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죠. 반대로 흡연자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흡연은 휴식 시간일 뿐이고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치를 주는 거냐는 겁니다. 이러다가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눈치 봐야 할 날이 올 것이라며 걱정을 토로하고 있죠.
부스의 참견팀은 ‘근무 중 흡연’ 문제를 두고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만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궁금했습니다. 과연 이 둘은 대화 과정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비흡연자인 서울경제신문 변재현 기자와 흡연자 이종호 기자가 나눈 ‘참견’ 한번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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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세상은 바뀌는데 ‘흡연자’만 그대로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흡연자들은 직장 내 알짜 정보를 쥐고 있는 ‘인싸’였습니다. ‘담배를 안 피고 싶은데 인간관계 괜찮을까요?’라고 물어보던 사람들도 많았죠. 흡연자들이 타 직원들의 눈치는 보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이 중요해지며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만 하자!’라고 외치는 곳이 많아졌죠. 일부 회사에서는 업무와 관련 없는 공간에 5분 이상 머물 경우 해당 시간은 근무 시간에서 제하기, 회의시간·자료준비 시간 줄이기, 사내 메신저(잡담시간) 금지 등 업무 비효율을 줄이려는 행동지침까지 내려오는 상황입니다.
흡연자들을 향한 시선도 과거와 사뭇 달라졌습니다. 흡연자들 역시 담배 냄새를 의식해 가글을 하거나 짧게 피우고 오는 등 눈치를 보기는 시작했습니다. 다만 대부분 회사가 유독 ‘담배타임’에 대해는 어떠한 구체적 지침이나 규제도 없죠. 때문에 비흡연자들 사이에서는 “왜 흡연자들에게만 회사가 호의적이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죠. 변재현 기자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핵심은 ‘우리가 너무 많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시간을 줄여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것’”이라며 “‘효율적으로 일하자’, ‘움직이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에 흡연자들에 대한 시선이 고까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흡연자 대표 이종호 기자는 “왜 주52시간의 첫 번째 타깃이 ‘근무 중 흡연’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흡연은 일종의 기호고 오히려 담배를 피지 않았을 때 집중력이 떨어져 더 비효율적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흡연을 통해 업무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논리에 변 기자는 “주52시간 제는 흡연자뿐 아니라 비흡연자도 똑같이 적용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흡연자들이 ‘산책 다녀오겠다’고 말하기 힘들지 않나. 하지만 우리도 참아가면서 집중해서 일하고 있는데 왜 흡연자들의 편의를 봐줘야 하나”라고 비판했습니다.
■Q2. ‘흡연자’들도 할 말은 많다 “우리 얘기 좀 들어봐”
흡연자들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흡연이 건강에는 나쁘지만 사회생활·인간관계를 고려했을 때 백해무익하지만은 않다는 것이죠. 이 기자는 “흡연을 하면서 유대감을 가지는 것이라든지, 그 사이에서 느끼는 애착감도 있어서 근무시간에 오히려 흡연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것도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 한 기업에서 임직원 1,2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보면 대리·사원급 직원 중 53%가 ‘흡연이 인간관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업무효율 면에서도 흡연이 도움된다고 강조합니다. 이 기자는 “니코틴이 뇌를 기분 좋게 해주고 주의력을 주고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흡연을 하면서 잡담을 하는 게 아니라 잠시 머리를 식히며 업무에 대해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기자는 최근 흡연자들이 근무 중 흡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도 어필했습니다. 그는 “최근 흡연자들의 경우 냄새가 불쾌할 것을 우려해 담배를 젓가락으로 피운다던지 겉옷을 따로 준비하기도 한다”며 “세금도 많이 내는데 이렇게까지 힘들고 눈치를 보며 피워야 하는지 서글프기도 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Q3. ‘흡연자’ vs ‘비흡연자’ 갈등에 대응하는 회사들의 자세
주52시간제가 바꾼 근무환경은 회사마다 제각각입니다. 효율화를 극대화하기 위해 파격 실험이 한창이죠. 한 게임업체는 5분, 15분 단위로 근무시간 체크를 시범 운영하고 있고, 15분 이상 컴퓨터를 조작하지 않으면 ‘자리비움’ 메시지가 뜹니다. 흡연실에 가서 5분 이상 있으면 ‘비업무 공간’으로 컴퓨터가 인식해 해당 시간은 근무 시간에서 제외됩니다. 변 기자는 “흡연문화가 관대했던 일본도 이제는 근무 중 흡연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최근 아베 정부에서도 ‘일하는 방식 개혁’을 외치며 잔업 시간을 줄이고 비는 시간을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업무시간을 조이는 것이 오히려 업무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여전합니다. 이종호 기자는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해 오히려 더 큰 성과를 낸 기업 ‘메디힐’의 사례를 소개하죠. 그는 “메디힐은 ‘사람은 앉아도 집중을 2-3시간밖에 하지 않는다’며 자기가 원할 때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존 기업의 논리라면 이 회사는 망해야 한다”며 “하지만 얼마 전 1억불 수출탑도 쌓을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는 걸 볼때 근무시간에 무조건 열심히 일만 하라는 주장이 100% 유효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반박했습니다.
■Q4. ‘노노갈등’으로 번진 흡연문제, 해결책은 없을까?
끝으로 근무시간 흡연 문제에 대한 근로자끼리의 해결책은 없을지 논의해봤습니다. 두 기자는 모두 함께 일하는 동료들 간에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기자는 흡연자의 한 명으로 담배 피는 것마저 눈치 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그래도 일부 흡연자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인정합니다. “짧게 담배 피우고 더 열심히 일하는 선량한 흡연자도 있지만 한 번 내려가면 30분 이상 업무의 공백이 생겨도 눈치 보지 않는 흡연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후자의 분들 때문에 흡연자 전체가 눈치를 보는 경우도 많은데 흡연자들도 업무 중 담배타임은 최소한으로 가지는 에티켓을 지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변 기자도 흡연자에게만 유독 차가운 시선을 보낼 게 아니라 근로자들 모두가 자신의 업무 효율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 기자는 “예를 들어 청국장 먹는 남자들은 점심시간이 짧은데 파스타 먹는 여자들은 점심시간이 길어서 일부 회사에선 성 대결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런 소소한 사내 갈등은 직장협의회를 구성한다거나 취업규칙을 바꾼다거나 등 방법으로 합의점을 찾아 서로 기분 좋게 일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최근 정부가 근무 중 흡연이 노동자의 생산성이나 노동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에 나섰다고 합니다. 흡연이 노동력 상실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으로 추정해 사업장 내 금연과 근무시간 인정 등 논란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건데요. 과연 직장 내 흡연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요. ‘월급 도둑’ 혹은 ‘시간 낭비’라는 의견과 ‘인정해줘야 하는 기호이자 개인 취향’이라는 주장 사이를 오가는 ‘담배 타임’에 대한 생각들. 여러 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제작=정수현기자, 이종호기자 value@sedaily.com
[편집자주] 서울경제신문 디지털미디어센터가 만드는 뉴스 ‘부스의 참견’은 우리 사회 주변에서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여러 사회 갈등과 이슈들에 대해 당사자 혹은 전문가들이 직접 출연해 숨겨 왔던 속내를 나눠보는 코너입니다. 온라인 게시판이나 뉴스 댓글로만 겨우 풀어냈던 갑갑한 속마음을 육성으로 풀어볼 수 있게 대신 ‘참견’해 드리죠. 사소한 갈등부터 복잡한 사회 이슈까지, 대놓고 말하지 못해 불만만 쌓였던 이야기들을 부스 속에서만은 속 시원하게 털어놓길 바라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너무 복잡해 보이던 문제도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도 만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