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홍콩인권법 서명…무역합의 불씨 다시 꺼지나

낙관 시사 하루만에 인권카드
매년 홍콩 경제특별지위 결정
中 "내정간섭…결연히 반격"
주중美대사 불러 강력 항의
바오류 붕괴 위기 직면한 中
美 추가요구 수용 명분 잃어
무역戰 장기화 채비 가속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무역협상 합의가 가까워졌음을 시사한 지 하루 만에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에 전격 서명했다. 미중 무역협상이 막바지 진통 단계라며 낙관적인 기대감을 편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중국이 불편해하는 인권 문제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지금까지 중국이 홍콩 인권법을 내정간섭으로 규정짓고 강하게 반발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미중 무역합의는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백악관은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인권법안과 홍콩 경찰에 대한 특정 군수품 수출금지 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홍콩 인권법안 서명 후 발표한 성명에서 “나는 시진핑 주석과 중국·홍콩 시민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 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법안은 중국과 홍콩 지도자와 대표자들이 서로의 차이를 평화적으로 극복해 오래도록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를 희망하며 제정됐다”고 덧붙였다.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과 함께 즉시 발효됐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검증해 홍콩이 누리고 있는 경제·통상에서의 특별한 지위를 유지할지를 결정한다.

현재 홍콩은 특별지위 덕분에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고율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특별지위를 박탈당할 경우 홍콩은 관세뿐 아니라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에 치명타를 맞게 된다. 미국은 또 홍콩 인권탄압과 관련 있는 중국 정부 관계자에 대한 비자 발급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홍콩 경찰에 최루탄과 고무탄 판매도 제한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홍콩 인권법 서명 가능성을 우려해 수차례 강력한 사전경고를 내놓았던 중국은 곧바로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28일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인권법 서명은 홍콩의 안정과 일국양제를 파괴한다”며 “미국이 중국 내정을 심각히 간섭하면서 국제법을 위배하려고 하는데 이는 노골적인 패권 행위로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이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측이 고집스럽게 행동하지 않기를 권고하며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결연히 반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와 함께 러위청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날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트럼프 대통령의 홍콩 인권법안 서명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표명했다.

트럼프의 홍콩 인권법안 서명으로 최근 낙관론이 커졌던 1단계 미중 무역합의에 먹구름이 끼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담은 법안에 서명한 것은 중국을 화나게 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서명 직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법에 모호한 입장을 취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법안의 일부 조항이 미국 외교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말을 덧붙였는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법안 서명으로) 무역회담이 복잡해질 것을 걱정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한 것은 처리를 미루거나 거부권을 행사해도 큰 의미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법안은 다음달 3일 자동으로 제정된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이 다시 의회로 넘어가지만 이미 하원에서 한 명을 뺀 전원 찬성, 상원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됐기 때문에 재의결은 시간문제다. NYT는 “홍콩 인권법은 정가에서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어도 법으로 제정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홍콩 인권법 서명으로 미중 합의가 생각보다 늦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미국은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재치가 연율 기준 2.1%로 속보치보다 0.2%포인트나 높아졌다. 무역전쟁에도 탄탄한 소비를 바탕으로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변수지만 아직 경제가 강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고율 관세 철회나 유보 등 중국의 강경한 요구를 쉽게 받아주지 않아도 당장 미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반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5%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 정부는 무역합의가 시급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홍콩 인권법안 서명으로 미국의 추가 요구를 선뜻 들어줄 명분이 약해졌다.

중국 국무원이 지방정부에 내년도 특수목적 채권발행액 총 1조위안(약 167조8,400억원)을 사전 배정해 올해 당겨쓸 수 있게 한 것도 무역분쟁 장기화와 빨라지는 경기둔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중국 담당 수석은 “무역합의 과정에 홍콩 문제를 결부시키는 것은 외부의 정치간섭에 극도로 예민한 중국 정부를 협상에서 이탈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베이징=최수문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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