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지운(18·가명)군은 최근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뒤 일찌감치 재수를 결정했다. 가채점 결과가 모의고사 평균 성적보다 30점 이상 떨어지는 바람에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입학을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김군은 “그냥 부모님과 살면서 부산에 있는 학교를 다닐지 잠시 고민도 했지만 지방대를 졸업하면 취업과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번번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듯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소득과 부동산 가격, 취업률 격차 등에 따른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인(in) 서울’, 즉 수도 입성이 사회적 지위 상승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처럼 인식되자 지방 청년들은 ‘고향 탈출’에 필사적인 모습이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서울의 1인당 개인소득은 연간 2,224만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았다. 반면 전남은 520만원 적은 1,704만원으로 18년째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1인당 민간소비 역시 서울(2,020만원)이 부동의 1위로 꼴찌인 전북(1,496만원)과 524만원이나 차이를 보였다.
청년들이 웬만한 지방 명문대보다 서울 소재 대학을 선호하면서 취업률 격차도 뚜렷하다. 취업 포털사이트인 잡코리아가 약 2,000명의 구직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올 상반기 서울·경기 지역 대학 졸업자의 취업 성공률은 41.3%로 지방대 졸업자(33.8%)보다 7.5%포인트나 높았다.
공연장과 테마파크 등 문화·레저시설이 넘쳐나는 서울과 달리 지방의 열악한 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지방 발령을 거부하는 직장인들도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수도권의 한 전자회사에 다니다 최근 부산지사로 인사 발령이 난 윤모 과장은 “20세 이후 줄곧 서울에서 살았는데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지방에 내려갈 생각을 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며 “한동안은 부산 근무를 하더라도 자리만 생기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전했다. 지방의 청년은 서울로 쏠리고 서울에 올라온 젊은이는 눌러앉으려 하면서 인구 1,000명당 결혼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올 3·4분기 기준 서울이 4.6건으로 세종(4.9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에 ‘서울의 꿈’을 접는 시민들도 많다. 아이디 ‘sjr****’을 쓰는 한 네티즌은 최근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 “돈 모아 집 사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었다가 서울 집값이 올라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경기도의 이곳저곳만 전전하고 있다”며 “영원히 서울 입성을 하지 못할 것 같아 박탈감이 너무 크다”고 자조했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은 모든 경제력과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된 ‘서울공화국’”이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지역 불균형 해소에 힘을 모으지 않는 한 양극화는 점점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