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은밀한 몸]말 못할 치질·발냄새…끙끙 앓지 마세요

■옐 아들러 지음, 북레시피 펴냄


“저는 치질이 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한 젊은 여성의 용감한 고백에 청중의 이목이 쏠린다. 그런데 잠시 후 이 여성이 말을 이어간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최근 TV에서 나오는 한 제약회사의 치질약 광고 카피다. 이 세상에 나만 앓는 질환이란 없다. 무좀이나 입 냄새부터 생식기 질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 못할 비밀을 한 가지씩은 갖고 있다. 형제, 동료, 친구 등 내 옆의 누군가도 비슷한 증상을 꼭꼭 숨긴 채 고통받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신간 ‘은밀한 몸’은 일상에서 말하기를 꺼리고 민망해서 병원에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비밀스러운 증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코골이나 무좀, 생식기에 생긴 피부병, 항문질환, 탈모, 발 냄새, 방귀 등 수십 가지의 증상을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대분류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은 병원에 가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워 혼자서 끙끙 앓다가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책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욕구나 문제 혹은 질병에 대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일례로 ‘코를 찌르는 양말 냄새와 뜨거운 발’에 대해서는 ‘과열된 신체를 이른바 생체에어컨의 증발냉각법으로 식히기 위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발이 쉽게 축축해지는 것은 우리의 조상이 아직 하이힐이나 가죽구두 없이 사바나 초원을 누비던 시절의 잔재로, 맨발로 도망칠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일종의 미끄럼방지 장치다. 시도 때도 없이 새어나오는 방귀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사람은 하루에 대략 10번에서 20번의 방귀를 뀌고, 이때 0.5~1.5ℓ의 가스를 배출한다. 탄수화물이 가스를 막대하게 증가시키고,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냄새가 더욱 강렬해진다.

독일 베를린에서 피부 및 비뇨기과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저자는 이런 증상들에 대한 원인뿐만 아니라 치료법까지 속 시원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을 찾거나 주변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당사자가 먼저 얘기를 꺼내야 한다는 점이다. 대화하지 않으면 모두가 홀로 외롭게 싸우며 괴로워 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나는 병원에서 늘 만난다. 그들은 오랫동안 홀로 괴로워했고 부끄러워했고 그래서 침묵했다. 사적인 터부를 말할 용기, 나는 그것을 북돋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만8,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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