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니스의 리도 섬 해변. /사진제공=진회숙
이탈리아 베니스의 리도 섬에 위치한 베인즈 호텔 . /사진제공=진회숙
1911년 5월 중순.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아내, 형과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의 리도 섬을 찾았다. 누이동생의 자살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다스리고, 쇠약해진 몸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의 눈에 비친 베니스는 어땠을까. 그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이 도시를 “아양 떠는 미녀같이 수상쩍은 도시”라고 했다.
아양 떠는 미녀같이 수상쩍은 이 도시는 어떻게 보면 동화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나그네를 옭아매는 덫 같기도 했다. 이 도시의 썩기 쉬운 공기를 맡으며 한때 향락에 빠져 예술이 번성했으며, 도시는 감미로운 자장가 같은 음을 음악가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정말로 동화 같기도 하고 덫 같기도 한 일이 일어났다. 이곳에서 자신이 평소에 꿈꾸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한 소년,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미소년을 만나게 된 것이다. 토마스 만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소년에게 빨려 들어갔다. 베니스에 머문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그의 시선은 그림자처럼 소년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녔다. 폴란드 귀족의 아들인 그 소년은 당시 가족들과 함께 휴양 차 리도 섬에 와서 토마스 만과 같은 베인즈 호텔에 묵고 있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년에 대한 열망은 작가이자 어른인 토마스 만의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토마스 만은 이 열병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썼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주인공 아셴바흐는 토마스 만의 현신(現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적이고, 이성적이고, 분별력 있는 작가로 존경을 받아왔다. 하지만 쉰 살을 맞은 어느 날, 갑자기 가슴 속에 잠자고 있던 남방(南方) 기질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거의 충동적으로 절제와 이성의 도시 뮌헨을 떠나 관능과 낭만의 도시 베니스로 떠난다.
베니스의 리도 섬에 도착한 아셴바흐는 상류층이 묵는 호텔 베인즈에 여장을 푼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한 외모를 가진 한 소년을 보게 된다. 소설에서는 그가 소년을 처음 본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보아하니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 정도 돼 보이는 소녀 셋과 열네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한 명 있었다. 아센바흐는 소년이 완벽하게 아름답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흠칫 놀랐다. 창백하면서도 우아하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은 벌꿀색 머리칼에 둘러싸여 있었다. 곧게 뻗은 코와 사랑스런 입술, 우아하고 신성하며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가장 고귀했던 시대의 그리스 조각품을 연상시켰다. 그것은 가장 완벽하게 형식을 완성 시킨 모습이었다.’
소년에 대한 아셴바흐의 마음은 스스로도 예감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남자는 열아홉 소녀처럼 들뜬 마음으로 안타까운 순정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소년의 이름은 ‘타치오’. 아셴바흐는 타치오를 찾아 호텔 로비, 레스토랑, 베니스의 뒷골목, 리도의 해변, 산 마르코 성당을 헤매고 다닌다. 그의 마음은 열병에 걸린 첫처럼 들떠 있다. 아폴로적인 절제와 금욕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살았던 작가가 한순간 디오니소스적인 욕망에 속수무책으로 내몰린 것이다.
리도 섬의 베인즈 호텔 앞에 전시된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관련된 사진들. /사진제공=진회숙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아셴바흐는 무모한 일을 저지른다. 이발사를 찾아가 흰머리를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다. 그리고 입술에는 빨간 연지를 바른다. 그렇게나마 늙은 모습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늙은 얼굴을 서글픈 화장으로 가린 채 아셴바흐는 소년의 주변을 맴돈다.
그러는 동안 리도 섬에 전염병이 돈다는 소문이 퍼지고, 소년의 가족은 병을 피해 섬을 떠나기로 한다. 호텔 지배인으로부터 소년의 가족이 점심 식사 후에 떠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아셴바흐는 안타까운 눈길로 소년의 행적을 좇는다. 부자연스럽게 화장을 한 얼굴로 해변의 의자에 앉은 아셴바흐. 그는 소년과의 이별에 절망한다. 전율하는 그의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머리와 눈썹, 얼굴과 입술을 물들인 염색약과 화장품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 추한 모습은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을 화장으로 감추려 했던 남자의 소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제 다시는 소년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이 온몸을 엄습하는 순간, 그의 몸에 이미 침입했던 병균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왔다. 멀리 사라져가는 소년을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작가는 그렇게 죽었다. 소년과의 이별이 곧 육신의 죽음이자 정신의 죽음이 된 것이다.
토마스 만이 리도 섬을 찾은 지 60년이 지난 1971년,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이 이 섬을 방문했다. ‘베니스의 죽음’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바로 같은 시기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루키오 비스콘티도 리도 섬에 있었다. 같은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브리튼은 자신의 영감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일부러 비스콘티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중성’ 혹은 ‘양면성’이다. 토마스 만은 평생 이렇게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 북부 출신 특유의 근면함과 도덕성, 견고한 이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반면에 그의 어머니는 포르투갈과 크레올의 피가 반반씩 섞여 있는 남부 출신의 다정다감하고 정열적인 여성이었다. 토마스 만은 아버지의 이성과 어머니의 감성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이성과 절제, 감정과 열정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둘 사이에서 갈등하고 투쟁했으며, 이것을 작품 속에서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싸움으로 묘사했다.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브리튼은 소설의 대표적 갈등 요소인 이중성을 서로 대조적인 동기와 음향의 사용, 목소리의 배치, 화음과 조성 간의 갈등을 통해 풀어냈다. 브리튼의 우선적인 목표는 등장인물이나 그들이 상징하는 추상적 개념들이 본질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아셴바흐와 타치오의 대비이다. 브리튼은 아셴바흐가 등장할 때는 12음 기법 같은 현학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타치오가 등장할 때는 발리의 가멜란 음악을 연상시키는 금속성 타악기로 오리엔털 풍
이탈리아 베니스의 리도 섬에 위치한 베인즈 호텔 전경. /사진제공=진회숙
이탈리아 베니스의 리도 섬 풍경. /사진제공=진회숙
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12음 기법과 발리의 가멜란은 애초부터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브리튼은 자신의 복잡한 존재론적 사고에 갇혀 있는 아셴바흐가 타치오와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콘트라스트는 캐스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아셴바흐 역은 테너가 맡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그는 끊임없이 노래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구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타치오는 노래하지 않는다. 타치오는 그리스 신에 버금가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말 대신 춤을 춘다. 타치오는 물론 그의 가족과 친구들 역시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브리튼은 아셴바흐라는 구체적 실체와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대비시켰다.
오페라의 마지막 장인 17장에서 아셴바흐는 호텔 매니저에게 타치오의 가족이 오늘 섬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 말을 들은 후 아셴바흐는 해변으로 나간다. 그곳에서는 타치오와 친구들이 놀고 있다. 그러다가 타치오와 친구 사이에 싸움이 붙는다. 두 사람의 싸움이 점점 격렬해지고, 마침내 친구가 타치오의 얼굴을 모래 바닥에 처박는다. 놀란 아셴바흐가 구해 주려고 달려가지만 곧 기운이 달려 쓰러지고 만다. 아셴바흐는 의자에 풀썩 주저앉고, 타치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닷가를 거닌다. 타치오의 모습이 그리스 조각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그 모습만큼이나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아셴바흐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베니스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리도 섬에서 내려 해변으로 걸어가면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아셴바흐가 죽어가던 해변이 나온다. 토마스 만과 벤자민 브리튼, 루키노 비스콘티가 작품 구상을 하며 거닐었던 바로 그 해변이다. 입자가 아주 고운 모래가 해변을 따라 넓게 퍼져 있어 예로부터 휴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지금도 휴가철이면 리도 해변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 바다를 마주 보고 베인즈 호텔이 있다. 토마스 만과 소년의 가족 그리고 비스콘티 감독이 묵었던 바로 그 호텔이다.
베인즈 호텔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규모가 큰 호텔 축에 든다. 1900년에 문을 열었는데, 당시 유럽의 부자나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 최고급 호텔로 유명했다.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클라크 케이블부터 키이라 나이틀리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모두 이곳에 묵었다. 1911년에는 토마스 만이 여기서 소설의 영감을 얻었고, 1929년에는 러시아 발레단의 흥행사 디아길레프가 여기서 세상을 떠났으며, 1971년 비스콘티 감독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이 호텔에서 촬영했다.
현재 리도 섬의 베인즈 호텔 앞에는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관련된 사진들이 붙어 있다. 하지만 지금 호텔은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채 굳게 닫혀 있다. 2008년에 이 호텔을 사들인 한 부동산 회사가 건물을 완전히 리모델링해서 레지던스 호텔로 재개관하기 위해 2010년에 문을 닫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베니스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이 호텔에 묵었던 사람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렇게 유서 깊은 호텔을 단지 돈벌이를 위해 뜯어고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호텔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토마스 만의 소설과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에 끌려 찾아간 리도 해변은 휴양객들로 들끓고 있었다. 모래밭에서 떠들썩하게 공놀이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서 타치오의 모습이 보였다. 다가갈 수 없는 젊음을 바라보며 아셴바흐가 죽어갔던 해변의 태양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더없이 밝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