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상임금 사태 보고도 임피제 혼란 부추기나

대법원이 노사 합의로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어도 개별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는 경북 문경시의 한 공기업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임금을 지급하라”며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취업규칙과 개별 근로계약 중 근로자에게 유리한 내용을 우선해 취한다는 노동법상 ‘유리조건 우선 원칙’에 따라 개별 근로계약을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로 인해 임금피크제에 불복하는 근로자들의 소송이 쏟아질 수 있게 됐다. 취업규칙은 노조나 전체 근로자의 과반 동의만 받으면 바꿀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행정부의 입장과도 상충돼 많은 혼란이 우려된다. 고용노동부가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 취업규칙 변경 당시 재직 중인 개별 근로자의 반대가 있었더라도 변경이 적법·유효하게 이뤄졌다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행정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이번 판결로 개별 동의를 다시 받아야 할 판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 판결의 파장이 임금피크제 도입뿐만 아니라 퇴직금, 복지후생 비용, 각종 수당 등 개별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은 근로조건 변경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사가 정식으로 합의하는 단체협약이나 개별 동의를 받지 않고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근로조건을 바꿨을 경우 유사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는 이번 사태로 예기치 못한 법률비용과 인건비 추가 부담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과거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결로 기업이 해마다 수조원대의 추가 비용 부담을 안게 한 후 번진 유사소송 사태가 재발할까 걱정이다.

더 큰 문제는 현 정부 들어 노사갈등을 다루는 대법원의 판단이 노동자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절반을 넘어선 지난해 8월 이후 친노동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잖아도 기업의 경영환경은 최악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법원이 산업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무리한 판결로 혼란만 부채질한다면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