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1905년 프랑스 정교분리법

공적 영역의 종교색 차단

1905년 12월 9일, 프랑스 하원이 ‘정교(政敎)분리법’을 통과시켰다. 내용은 말 그대로 분리. 이데올로기와 제도로서 정부(국가)와 교회(종교단체)의 선을 명확히 긋고 벽도 세웠다. 44개 조항을 통해 구체적 방향까지 제시했다. 사적 영역에서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되 공적 영역에서는 종교적 색채를 드러낼 수 없다는 정신이 깔려 있다. 반대하던 교회는 법 제정 이후 의외의 반응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정교분리법에 따라 교회 재산을 돌려받자 교황 비오 10세는 ‘물질보다 중요한 정신적 자산을 지키겠다’며 재산을 나라에 돌려줬다.


유럽에서 정치와 종교의 상관관계는 정치사와 철학사에 큰 흔적을 남겼을 만큼 고래로부터의 관심 사항. 처음에는 종교와 정치가 같은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기독교 공인 직후 그리스 철학과 히브리즘을 결합한 성직자인 성 어거스틴은 ‘신국론’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일치할 것이냐, 따를 것이냐’라는 물음의 연장선으로 지상에 천국의 도시(the City of God)를 세워야 한다고 설파했다. 교회는 이를 속권(정치)에 대한 신권의 우위로 받아들였다. 국왕들은 훗날 ‘왕권신수설’로 변형시켜 통치 합리화의 도구로 써먹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들면서 교권과 속권의 구분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쏟아졌다. 교회와 정치의 분리(존 로크), 이성과 진리는 신앙과 무관(피에르 베일), 정부와 교회의 고유 역할과 분리(몽테스키외), 국가에 예속된 교회(볼테르), 왕권과 제단과의 분리(디드로) 등의 주장이 처음으로 실행된 나라는 미국. 토마스 제퍼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은 신앙은 자유와 국교 금지를 헌법에 못 박았다. 근대 시민혁명의 나라, 인권선언(1789)이 나온 프랑스에서 20세기 들어서야 정교분리가 법에 규정된 이유는 혼란 탓이다.

정치에서 교회를 뺀 프랑스 대혁명 초기와 달리 나폴레옹에 의해 교회의 특권이 부활하고 이어지는 혁명과 대외전쟁에 휘말리며 정교분리는 부침을 거듭해왔다. 결정적으로 1894년 발생해 4년 뒤에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으나 1906년에야 마무리된 드레퓌스 사건을 둘러싸고 프랑스의 여론이 극한적으로 갈린 이후 정치권은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정교분리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마침내 법으로 만들었다. ‘라시에테법’으로도 불리는 정교분리법 등장 114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종교를 생각한다. 정치에 기웃거리고 법원의 결정마저 무시하며 하늘의 뜻을 강조하면서도 돈을 위해 이전투구를 마다 않는 일부 종파는 도대체 어디에서 떨어진 것일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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