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뮤지컬 관객이 인정했다.. ‘인간 피로회복제’ 신영숙

댄버스 장인의 다섯번째 무대..뮤지컬 ‘레베카’ 주역
“긍정적 영향 주는 배우 되고파“

“제 공연에 힘을 얻고 간다는 관객들의 말씀에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거 같아요”

수 많은 뮤지컬 관객이 인정한 ‘인간 피로회복제’ 신영숙은 공연마다 살아있는 연기와 스토리를 음악으로 들려주는 배우다. ‘레베카’로 2016년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신영숙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다섯번째 ‘레베카’와의 만남이다. 댄버스 부인의 머리와 영혼은 물론 DNA까지 제 몸에 맞춰 입은 배우의 공연은 분명 달랐다.

“‘레베카’ 속 댄버스 부인을 다시 맡게 돼 너무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꿈같고 영광스러워요.”


‘인생 작’이란 표현 만으론 부족했다. 댄버스 부인에게 ‘레베카’가 영원한 생명이었듯, 신영숙에게 ‘레베카’는 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자 그를 다시금 일어서게 하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시원한 가창력과 탁월한 무대 장악력을 보여주는 신영숙은 뮤지컬 ‘엘리자벳’, ‘웃는 남자’, ‘레베카’, ‘명성황후’, ‘맘마미아’, ‘모차르트!’ ‘엑스칼리버’, 팬텀‘, ‘캣츠’ 등 다양한 작품의 주역 캐릭터를 소화하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신영숙 댄버스가 몰고 오는 기운은 관객을 압도할 정도로 스산한 감이 감돈다.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병적인 집착을 하게 된 이의 내면 속에서 나오는 불편한 에너지가 무대 등장만으로 표출될 수 있는 건 배우의 노력과 내공 덕분이다. 초연 때는 넘버를 파워풀하게 불렀다면, 회를 거듭할수록 인물의 행동에서 ‘이유’를 찾게 되는 그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댄버스 부인의 그런 눈빛과 손동작이 나오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댄버스가 너무나 사랑하는 레베카를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분들의 감정에 이입해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감히 그분들의 마음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내 마음에 고통과 슬픔이 있어야 연기로 승화돼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매회 공연을 거치면서 왜 그렇게 표현을 했는지, 어떤 이유에서 그런 눈빛과 손동작이 나오는지 등에 집중되더라. 댄버스의 감정을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면서 깊이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 같다.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이 맞닿아서 조금 더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본다.”



수 많은 시간 동안 ‘레베카’는 신영숙의 마음 한 켠을 자리한 작품이다.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 내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반전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더 있었다면, 이번에는 ‘분노’가 더 많아졌음을 느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슬픔이 깊어져서 분노가 커졌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초연 때와는 다르다.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조금 더 쌓이는 게 나한테도 느껴지는 것 같다. 소시오패스 또는 모나고 각진 성격의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해도 몸이 경직되는 것 같고 불편하지 않나. 댄버스는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잘못된 신념을 확고하게 밀어붙이고, 말이나 동작 뿐 아니라 그의 걸음걸이, 등장만으로도 ‘서늘’해지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다. 관객들이 제가 등장할 때 ‘에어컨을 더 틀었나’ 생각하신다고 하던데(웃음). 그렇게 느껴주셨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신영숙은 관객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신영숙은 “팬 분들이 있었기에 배우로서 해야 했던 새로운 많은 도전들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며 ”관객들의 사랑의 힘이 컸다“라고 말했다. 팬 분들이 보내준 마음이 담긴 편지는 놓치지 않고 다 꼼꼼하게 읽으면서 힘을 낸다고 했다. 그의 애칭인 ‘마마님’도 팬들이 지어준 것이다. 2009년 서울예술단이 선보인 뮤지컬 ‘이’에서 신영숙이 열연한 인물 ‘장녹수 마마’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후 뮤지컬 ‘모차르트!’ 로 팬층을 넓힌 뒤, ‘레베카’ ‘엘리자벳’ 등으로 뮤지컬 배우의 정점에 올라섰다. 실제 ‘엘리자벳’은 국내 초연이 되기 전부터 신영숙의 팬들이 번역본을 선물해주며, ‘엘리자벳’ 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는 날을 한 마음으로 응원했던 작품이다.

‘엘리자벳’ 첫공연이 끝나고 팬들과 로비에서 눈물바다가 돼서 기쁨과 감동을 함께 한 추억은 언제든 꺼내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이렇게 얘기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하면서 잠시 촉촉한 눈빛을 내비쳤다. 이날은 신영숙 배우의 첫 라운드 인터뷰 날이기도 했다. 수 많은 취재진들이 함께한 모습을 본 신영숙은 “오늘 이렇게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와주신 게 감사하고 감격스럽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달했다.

“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에요. ‘영숙’이란 이름처럼 평범한 사람인데, 이렇게 사랑을 주심에 감사해요.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타도 아닌데, 이렇게 인터뷰를 위해 발걸음을 해주시고, 저의 공연을 보시고 힘을 얻어간다는 말에 저 역시 힘을 얻는다. 뮤지컬 전문 배우로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에서 부족함을 느낄 때도 분명 있었다. ‘나도 방송에 나가봐야 하나’ 그런 고민과 좌절감을 느끼던 그 순간에도 날 기운 나게 하는 건 역시 ‘관객’ 분들 이었다. ”

신영숙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배우다. 20대보다 30대가 빛나고, 30대보다 40대에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앙상블부터 시작해 주연자리까지 차근 차근 올라간 배우로 후배 뮤지컬 배우들의 롤 모델이 되기도 한다. 현재 뮤지컬 배우의 최고자리까지 올라왔지만 그는 “지금도 대단한 배우가 아닐 뿐 아니라, 제가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40대에 주연을 더 많이 맡는 배우라고 해서 다른 배우들과는 다른 행보로 봐주시기도 하더라. 의도해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제가 남들보다 엄청난 외모와 몸매 실력등 그런 걸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하나 하나 단계들을 밟아나가면서 발전을 했다. 그 점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수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있지만, 객관적인 관객들이 인정한 뮤지컬 배우는 많지 않다. 신영숙은 “정신과 체력을 강하게 단련하면서, 늘 살아있는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배우”가 그가 가고자 하는 배우의 방향성이다.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의 노력을 해온 배우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했다. 오래 전 뮤지컬 ‘명성황후’ 오디션에 합격했던 순간 역시 잊을 수 없다. 배우로서 작품을 할 수 있기에 감사하다는 초심을 늘 되새기고 무대에 오른다. 배우는 관객이 있고, 봐줄 사람이 있어야 존재하는 직업이지 않나. 긍정적인 마음과 ‘관객과의 약속을 꼭 지키자,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말자’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인간 신영숙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지만, 배우 신영숙으로선 완벽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배우로 오래 오래 남고 싶다.”

한편 ‘레베카’는 오는 2020년 3월 15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댄버스 부인’은 쿼트러플 캐스팅으로 신영숙, 옥주현, 장은아, 알리가 맡았다. ‘막심 드 윈터’ 역엔 류정한, 엄기준, 카이, 나(I) 역은 박지연, 이지혜, 민경아가 캐스팅됐다.

[사진=양문숙 기자]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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