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환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한국 주식시장이 약한 이유로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우려가 단골 메뉴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한국과 경제와 주식시장 구조가 유사한 대만은 견고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가들도 지난 11월7일 이후 대만 주식을 1조5,000억원가량 순매수했다. 대만 주식시장이 선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민간의 활력에서 차이가 있다. 2020년 1월 총통선거를 앞두고 대만의 3·4분기 정부지출은 전년대비 3.4% 감소했다. 반면 정부지출을 제외한 민간 성장률은 2.7% 상승했다. 한국 정부지출은 전년 대비 6.8% 증가했지만 민간의 성장률은 0.9% 상승에 그쳤다.
민간의 활력 여부는 주식시장 상승의 확산범위를 결정한다. 12개월 예상 기업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을 보면 대만(11%)보다 한국(19.8%)이 더 높다. 그러나 개별 기업들의 이익 개선 범위를 나타내는 이익 상향조정 비율(이익 상향기업 수-하향 기업 수)은 다르다. 대만 기업들의 이익 상향 비율은 높아진 반면, 한국 기업들의 이익 개선 범위는 주춤하다.
두 번째 차이는 미중관계에서의 전략적 위치다. 대만은 양안 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무역분쟁이 시작된 2018년 이후 대만으로는 해외직접투자(FDI)가 늘어났다(2017년 76억달러, 2018년 115억달러, 2019년 117억달러). 반면 한국으로 유입되는 직접투자 규모는 감소했다(2017년 229억달러, 2018년 269억달러, 2019년 180억달러 추정). 대만은 중국 생산의 대체기지가 된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세 번째 차이는 북한 이슈다. 지난주 말 북한의 동창리 실험을 전후로 북미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북미관계가 싱가포르회담 이전으로 되돌아간다면 그만큼 한국 자산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올해 상반기에 반도체 주식을 이미 사들인 외국인 투자가들 입장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한국 주식을 매수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국 주식시장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우선 부진한 요인들이 주가에 반영됐다. 한국 주식시장의 상대강도(MSCI 전 세계 지수 대비)는 다시 8월 저점에 접근하고 있다. 지난 6년간 평균의 -2 표준편차 수준이다. 한국 주식시장이 더 부진할 가능성도 낮다.
다음으로, 이익 추정치의 하향 조정이 마무리됐다. 2019년과 2020년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 영업이익 추정치가 개선되고 있다. 반도체 이외 업종 실적 개선에 확신이 커지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연말까지 그래도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은 정보기술(IT)과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도 압력이 덜한 업종에 대한 관심은 유효하다. 향후 실적 개선 가능성을 감안하면 외국인 투자가들의 전기·전자 업종 매도는 기회다. 또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도 압력이 약한 섬유·의복·서비스·음식료 업종에 대한 관심도 가능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