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크리미널 조선]사법적폐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크리미널 조선
박영규 지음, 김영사 펴냄


조선시대 선조 36년이던 1603년, 경기도 포천의 한 무덤가에서 칼에 무참히 찔린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야밤에 화적 떼의 습격으로 살해된 것으로 보였다. 피해자는 명문가 출신의 고위관료 유희서.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지금의 법무부 격인 형조가 중심이 돼 경찰청에 해당하는 포도청과 경기도와 충청도 병력까지 동원해 범인 색출에 나섰고, 한 달 만에 화적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설수’를 체포해 구금했다. 그런데 설수가 감옥에서 별안간 죽었다. 이어 유력한 관련자인 김덕윤을 체포했지만, 그 역시 조사를 앞두고 감옥에서 의문사했다. 기이했다. 용의자가 잇달아 4명이나 감옥에 갇힌 채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이 살인의 배후가 선조의 큰아들 임해군이며, 사건을 은폐하려 한 이가 선조였음이 드러난 것은 나중 일이다. 포도청과 의금부가 수사한 결과, 임해군이 유희서의 첩 애생을 가로채려 강도사건으로 위장한 청부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임해군은 처벌받지 않았다. 선조가 임해군의 처벌을 상소한 포도대장 변양걸, 영의정 이덕형, 정승 심희수 등을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기 때문이다. 아들 사랑에 눈먼 아버지가 오히려 경찰청장,국무총리,장관 등을 내친 격이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으로 유명한 대중역사 저술가 박영규가 실록에 정통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조선의 범죄 이야기를 뽑아냈다. 새 책 ‘크리미널 조선’은 강도·방화·살인부터 미제사건까지 70가지 흥미로운 범죄 사례로 조선의 민낯을 보여준다.

조선에도 법의학이 있었다. 송나라의 법의학 서적을 참고해 원나라 때 쓰인 ‘무원록’에다 새로운 주석을 단 ‘신주무원록’이 검시 지침서로 사용됐다. 몽둥이로 맞아 죽은 시체는 눈이 열리고 손이 흐트러져 있으나 복부가 팽창하지 않고, 손발로 구타당해 죽은 시신은 발로 찬 흔적과 함께 상흔 둘레가 도드라져 있다는 특징이 기록돼 있다. 살해된 시신을 확인하는 검시 담당자는 요즘 말로 법의관에 해당하는 ‘오작인’인데, 노비신분이었다. 오작인이 시신의 사타구니부터 갈비뼈 아래까지 샅샅이 살핀 후 검시관에게 시신의 상태를 알리면 검시관은 직접 시체를 보지 않고도 사인을 추론했다. 그러다 보니 오작인이 거짓을 말하면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뇌물을 받고 타살을 자살로 위장한 경우도 있었다.

책은 조선을 점잖은 선비의 나라로만 여기는 것이 패착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온갖 성범죄와 무고, 위조사건이 있었고, 법은 엄연히 존재했으나 백성으로부터는 멀었고 권력자들 편에 가까웠다. 사법개혁이 왜 어려운지를 역사로 말해준다. 1만5,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