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양보로 무역戰 막고 대규모 부양책…中 '바오류 사수' 올인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시장 전망은]
■中 '전격 합의' 속내는
바오류에 체면 걸린 시진핑
내년 '샤오캉 사회' 위해 결단
500억弗 농산물도 큰 부담 안돼
적극 재정투입 경기활력 주력
온건 통화카드로 성장률 제고


중국이 그동안 주저했던 미국산 농산물 대량 구매 등을 조건으로 미국과 1단계 무역합의에 나선 데는 ‘바오류(保六·6% 이상 경제성장률)’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공산당의 최대 관심사인 ‘사회안정’을 유지하고 특히 내년 이른바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을 위해서는 무역전쟁의 확전부터 일단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13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를 보도한 것과 달리 중국 당국이나 관영 매체는 하루 종일 침묵을 지켰다. 일단은 미국의 공식발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더해 중국 지도부의 체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결사반대했던 미국산 농산물의 대량 구매를 허용한 데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 폭스비즈니스의 에드워드 로런스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 측은 합의 문구를 공개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농산물 매입에 구두로 합의했으나 서면으로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등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지난 10∼12일 베이징에서 개최한 연례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안정’이라는 글자를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회의 소식을 전하며 “2013년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연례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안정’이라는 단어가 주요 경제 목표로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분석했다.

주요 글로벌 연구기관들이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와 경기둔화로 중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6%선 밑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가 느끼는 위기의식을 보여준 대목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들의 전망치를 종합해 내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5.9%로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오는 2021년은 5.7%까지 하락할 것으로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일단은 내년 ‘바오류’ 사수가 최대 관건이다. 2010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2021년 전면적 샤오캉 사회 실현을 앞두고 2020년까지 국민소득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년에 6% 이상 성장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가 바오류에 목매는 이유다. 여기에 현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의 체면이 걸려 있는 것이다.

미국에 양보하기로 한 500억달러 규모의 농산물 수입은 사실 중국 입장에서 큰 규모는 아니다. 어차피 중국 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창궐로 돈육 수입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이를 보충할 필요도 있다. 지식재산권 보호와 금융 개방 역시 중국의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다.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를 흔들 ‘불공정 제도·관행’으로 분류되는 산업보조금이나 강제적 기술이전 등 핵심 쟁점만 아니라면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최근 경기둔화의 가장 주된 이유였던 미중 무역전쟁을 ‘스톱’ 시켜놓은 상태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온건한 통화정책을 통해 성장률을 제고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복안인 셈이다.

중국은 중앙경제공작회의 폐막 후 발표된 공보(코뮈니케)를 통해 “경기 조절 강도를 과학적으로 조정하고, 미시경제 주체 활력을 제고하는 가운데서도 공급 측 구조개혁이 전 거시정책의 모든 과정에 관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양정책을 확대하는 가운데 리스크 방지에도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상충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를 “‘온(穩·안정)’과 ‘활(活·부양)’의 병행추진”으로 설명했다.

일단 중국은 적극적인 재정투입을 통해 경기부양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SCMP는 “중국 정부가 올해 2.8%인 재정적자율 목표치를 내년에는 3%로 올릴 가능성 있다”고 전했다. 다만 국가부채 확대 등 리스크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인 차이신은 “최근 재정집행의 ‘효율’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도 무분별한 재정확대에 대한 주의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전날 나온 중국 정부가 중앙경제공작회의 공보에서 내년도 성장률 목표치를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약 6%’를 상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실상 국가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도 앞서 내년 경제성장 전망치를 6%로 내놓았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내년 성장률 6% 목표치는 올해의 ‘6~6.5%’보다는 하락한 것이지만 어쨌든 바오류는 지키는 셈”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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