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펀드의 총 설정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들어 20조원 이상 자금이 유입되는 등 고속 성장세가 이어지면서다. 개인투자자들이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기관투자가들도 대체투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부동산 펀드의 성장을 이끌었다. 여기에 정부가 공모형 부동산 펀드를 대상으로 세제혜택을 주는 등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과도하게 부동산 펀드로 쏠리는 상황은 경쟁심화와 리스크 확대 등으로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금융당국이 부동산 펀드를 전반적으로 점검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분위기도 나타난다.
◇1년 새 주식형 펀드보다 10배 늘어=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1일 기준 부동산 펀드의 총 설정액은 100조48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초 79조6,200억원과 비교하면 올해만 20조원 이상의 자금이 몰린 셈이다. 특히 주식형 펀드의 경우 같은 기간 약 2조원(176조2,433억원→178조4,352억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부동산 펀드의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부동산 자산에 투자는 하지만 ‘부동산 펀드’로 분류되지 않는 혼합자산 펀드, 파생상품 등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이라는 게 운용업계의 추정이다.
부동산 펀드의 인기몰이는 국내 금융시장의 저금리 고착화와 증시의 불안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연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금리가 이어지자 투자자 입장에서는 연 5~6% 수준의 수익률을 제시하는 부동산 펀드의 매력이 크게 높아졌다. 또 미중 무역분쟁 등 대내외적 변수로 국내 증시가 큰 폭으로 등락하지만 핵심 권역에 위치한 우량 오피스 등을 담은 부동산 펀드는 추후 시세차익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물론 큰 폭의 가치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에 관심을 끌었다. 이에 그간 기관투자가가 중심이었던 부동산 사모펀드 시장에 자산가 등을 비롯한 개인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성장을 급속화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대체투자 수요를 늘린 것도 부동산 펀드 성장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부동산 자산 매각에 나섰고 때마침 기관들도 대체투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건물을 매입하는 사례가 늘어나 펀드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다는 뜻이다.
◇내년에도 성장세 지속될 듯=업계에서는 부동산 펀드의 성장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공모형 부동산 펀드를 대상으로 세제혜택을 주기로 하자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내년부터 공모형 투자자에게 연간 5,000만원 한도로 분리과세를 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 방안에는 공모형 부동산 펀드가 우량자산을 담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라진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세제혜택과 우량자산 공급 등 부동산 펀드에 대한 투자 유인을 확대해 부동산 투자의 패러다임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며 “주식시장 불확실성, 금리 인하 등의 시장환경도 부동산 대체투자에 우호적”이라고 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투자자와 운용사 모두 공모상품으로 인한 세제혜택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공모형 상품 출시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상품들이 본격적으로 부동산 자산을 담게 될 경우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부작용 우려도…“옥석 가리기 시작”=급격히 성장한 부동산 펀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사들이 우후죽순 부동산 투자에 나서다 보니 물건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투자가 집행됐고 추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KB증권이 판매하고 JB자산운용이 운용한 ‘JB 호주NDIS 펀드’의 경우 호주 현지 운용사가 약속에 없던 부동산을 매입해 손실을 끼친 바 있다. 한국 금융사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매입 가격만 높여놨다는 볼멘소리도 여전하다. 이에 낮아지고 있는 투자 수익률도 걱정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부동산 대체투자 수익률은 운용기관 간의 경쟁심화와 수급 불균형 및 고평가 인식에 따른 가격부담 등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당분간 같은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해외 부동산 펀드의 관리감독 강화를 주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남권의 한 대형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부동산 가격이 고점을 찍었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보유한 자산을 매물로 내놨지만 기관투자가들이 이를 받아주지 않자 사모펀드가 매입한 뒤 개인에게 셀다운(재판매) 하는 경우가 있다”며 “해외 부동산 펀드의 사고 사례와 부동산 경기 등을 생각하는 자산가들이 많아 부동산 펀드를 예전만큼 권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의 대체투자본부장은 “급격하게 커진 부동산 펀드에 대해 이제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옥석 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