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바람 피운 현직 판사에 정직 2개월=대법원은 최근 법관징계위원회를 열고 법관으로서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A(36) 판사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유부남인 A판사는 2014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다른 여성과 내연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2월 불륜을 의심해 휴대전화를 보여달라는 아내와 실랑이를 벌였고 배우자에게 열흘가량 치료를 받아야 될 정도의 상해를 입혔다.
A판사의 비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2016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소속 재판부에서 심리 중인 사건 변호사들과 11차례나 부적절한 골프 모임을 가졌다. 대법원은 A판사 이외에도 혈중알코올 농도 0.163%의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적발된 B(40) 판사에게 감봉 2개월을, 아내의 부탁을 받고 개인정보가 담긴 형사 판결문 3개를 이메일로 보내준 C(41) 판사에게 견책 처분을 각각 내렸다.
11일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시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문제가 심각한데 왜 파면하지 않느냐” “저런 주제에 이혼 소송을 맡았던 건 아니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누굴 재판하느냐” “너무 관대한 처분 아니냐”는 등 비판 의견이 온라인 상에서 앞다퉈 쏟아졌다.
◇판사는 탄핵·징역 등 아니면 파면 못해=현 법관징계법상 판사에 대한 징계 처분은 정직, 감봉, 견책 등 세 가지뿐이다. 법관의 직무 위반·태만 등이 드러나면 소속 법원장이 징계를 청구해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에서 최종 처분을 내린다.
견책은 서면으로 훈계를 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다. 감봉은 1개월~1년 중 일정 기간을 정해 봉급의 3분의 1 이하를 깎는 징계를 말한다. 정직은 1개월~1년 사이 직무집행을 정지하고 해당 기간 보수를 아예 안 주는 징계다. 사실상 법관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징계다. 법적으로 보면 정직 1년이 판사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인 셈이다. 원칙적으로는 A판사가 받은 정직 2개월 처분은 법원에서 결코 가벼운 징계는 아니다.
법관에 대해 파면이나 해임 징계는 없다. 헌법 106조가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거나 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은 한 파면되지 않는다’고 판사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부 독립을 위한 규정이다.
◇음주운전해도 견책 처분... “징계 수위 높여야”=하지만 이 같은 법관 신분 보장 혜택이 현실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게 나온다. 실제로 음주운전, 몰카 등 사회적으로 파렴치한 범행을 저지른 판사 상당수가 지금도 버젓이 법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 서울고법 판사와 제주지법 판사는 2013년과 2014년 각각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받고도 서면 경고인 견책 처분만 받았다. 2017년 7월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감봉 4개월 징계에 그쳤다. 반면 같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한 법원 일반 직원은 2016년 해임됐다.
법관에 대한 낮은 징계 수위는 사법농단 사태 때 다시 한 번 크게 조명됐다. 당시 법관징계위는 연루 판사들에 대한 징계를 6개월이나 미루고 미루다 결국 지난해 연말에야 법관 13명 중 8명만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그마저도 3명은 정직 3~6개월, 4명은 감봉 3~5개월, 1명은 견책 등에 그쳤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사법부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거졌음에도 정직 1년의 최대 징계를 받은 판사는 아무도 없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판사들이 받는 징계 수위는 같은 죄를 저질렀을 때 일반인이 직장에서 받는 징계 처분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법관은 다른 직업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군임을 감안할 때 징계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