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마진 '없이' 팝니다 '마더그라운드'

[디자인의 재발견-이근백 루트 대표]
원가 세부내역, 협력업체 공개하고
유통마진 없애려 홈페이지서 판매
신발 신어보고 싶은 고객들 위해
전국 돌며 팝업매장 '보부스토어' 열기도
"가보지 않은 길 끝에 좋은 일 있을 것"
도전 응원하는 마음 아웃솔에 담아
두번째 스니커즈 컬렉션 'RO' 출시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보면 그 끝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스토리를 담아낸 ‘RO(로)’.

이근백 대표는 독특한 밑창이 땅에 무늬를 남기듯, 마더그라운드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흔적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O(왼쪽)와 첫번째 컬렉션(오른쪽).

여기 다져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걷는 신발 브랜드가 있다. 유통 거품을 완전히 없애겠다며 자체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하는 것도 모자라 생산비, 운영비, 임금, 마진 등 원가 세부내역을 공개하고 협력업체라는 두루뭉술한 설명 대신 제작공장, 금형업체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직접 신어보기를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전국을 돌며 팝업매장 ‘보부스토어’를 운영하는 수고로움도 마다 않는다. 스스로를 봇짐 짊어지고 팔도를 누비는 옛 보부상과 닮았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처음엔 신기하다가 이내 궁금해지는 주인공은 2017년 등장한 ‘마더그라운드’다. 지난 6일 열여덟 번째 보부스토어가 열린 코엑스에서 이근백 대표를 만났다. 매끄러운 아스팔트 대신 먼지 나는 울퉁불퉁한 길을 선택한 그의 인생이 오롯이 담긴 두 번째 컬렉션 스니커즈 ‘RO’와 함께 였다.

이근백 대표는 패션계에 종사해왔다. 지난 2006년 국내 1세대 스트리트 브랜드 ‘브라운브레스’의 창립 멤버로서, 2016년 회사를 나올 때까지 가방과 티셔츠 제작에 힘을 쏟았다. 다시 혈혈단신이 된 그가 선택한 건 의외로 신발이었다. 재고 부담과 개발시간, 비용 압박 때문에 엄두도 못 내던 아이템이다. 이유를 묻자 그는 “오랜 로망이었다”고 했다. 여건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좋아하니까,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단다. 패기 있게 시작은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공장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했다. 온통 처음인 것 투성이다보니 합을 맞추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컬렉션은 한결 수월했겠다는 질문에 “오히려 곱절 이상 시간이 들었다”며 웃었다. 알면 알수록 도저히 포기 못하는 게 늘어서라고 했다.

스니커즈 브랜드 ‘마더그라운드’ 창업자 이근백 루트 대표.

- ‘RO’ 개발에 1년이 넘게 걸렸다.

△첫 컬렉션 때는 너무 몰라서 타협한 게 많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어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제조과정에서 어렵다고 이야기하면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받아치는 정도가 됐다. 디자인적으로 타협하는 대신 복잡한 공정을 택했다.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부분은 아웃솔 개발이다. 마더그라운드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아웃솔 디자인으로 녹여내는데, 3D 모델링→목형→금형 과정이 필요하다. 수작업도 필요하고 금형을 전부 새로 제작해야 해서 ‘RO’의 경우 샘플 만드는 과정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첫 컬렉션은 5개월 소요됐으니 2배가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거친 바위길을 형상화한 마더그라운드의 두번째 컬렉션 ‘RO(로)’의 밑창. 마더그라운드는 아웃솔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번에도 아웃솔 디자인이 독특하다.

△아스팔트 대신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사실 내 얘기이기도 하다. 별도의 유통채널을 최소화한 것, 원가를 공개하는 것 등 구조적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으니까. 힘든 면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여 가까이 버티다 보니, 이런 새로운 도전 자체에 공감하고 좋게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처음이랑 비교하면, 마더그라운드를 찾는 사람들이 이만큼 생겼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그래서 ‘RO’의 이야기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울퉁불퉁한 길 끝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도전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스토리를 전달하고 싶었다. 투박한 느낌을 담아 디자인했다. 바위산 협곡 아래 난 길을 상상하면서. 첫번째 아웃솔과 형태는 완전히 다르지만 비정형성이 있고 자연의 느낌을 줄 수 있는 형태라는 정체성은 공유했다.

‘RO(로)’의 디자인 스케치. 개발과정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아웃솔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는 뭔가.

△시장성으로 보면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아웃솔을 개발하는 업체가 많지 않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공정이 복잡하고 해도 한 티가 많이 안 난다. 어렵다. 사실 그래서 더 좋았다. 카피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니까. 또 모든 부분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었다. 작은 브랜드는 대부분 보급용 아웃솔에 어퍼(신발 윗부분)로 차별화 하는데 어렵더라도 신발 전체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아내기로 했다. 착화감 등 기능적인 면을 결정짓는 요소이기도 하니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직접 만들며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했다. 첫 번째 아웃솔 디자인 후에 마더그라운드라는 브랜드명을 지었다. 독특한 밑창이 땅에 무늬를 남기듯, 마더그라운드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흔적을 남겼으면 좋겠다는 뜻도 담아서.

마더그라운드의 카키색 제품 ‘이끼’. 이끼 ‘태’자가 마치 낙관처럼 새겨져 있다. 마더그라운드는 제품의 색깔을 지칭하는 사물을 한자로 표현한다.

마더그라운드의 ‘미역’.

-자작나무·이끼·미역 등 스니커즈 색깔별로 이름이 참 독특하다.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디자인이다 보니 흰색 스니커즈는 자작나무, 검은색은 갯벌, 카키색 신발은 이끼, 아이보리색은 누룩, 녹색은 미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더불어 그 사물들을 지칭하는 ‘한자’를 제품에 새겨넣었다. ‘한자’는 딱 한 글자로도 뜻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숨겨진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아, 매번 강조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혹은 설명을 듣고 재밌어하는 분들이 많다. 다양한 색상의 제품을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산호색이라든지 미역색이라든지 된장색은 메인으로 밀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선택지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포인트 컬러로 쓸법한 색이라는 이야기도 가끔 듣는데, 사실 실제로 신어보면 어느 옷에나 매치하기 편한 색상들이다.

-처음부터 유통마진 없이 자체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인지도가 부족한 신생 브랜드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패션 브랜드를 10여 년간 운영해온 경험에서 하게 된 선택이다. 그때는 온라인 셀렉샵, 오프라인 매장 할 것 없이 유통을 참 많이 했다. 브랜드는 몰라도 사이트나 샵을 알면 믿고 구매하니까. 장점이 있지만 그렇게 운영하다 보니 유통처가 너무 많아지면서 오히려 리스크가 됐다. 예를 들어 유통처가 10개면 기본 10개는 만들어야 하지 않나, 유통처가 많아질수록 재고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도매로 하는 게 아니라 잠깐 빌렸다가 수수료를 가져가는 위탁판매방식이다 보니 감당이 안되더라. 브랜드보다 유통업체가 가져가는 게 더 많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모델이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유통업체를 끼지 않아야만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왜 우리 홈페이지에서 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미국에 ‘에버레인(Everlane)’이라는 패션 브랜드처럼 원단, 공임비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적절하다고 봤다. 그들처럼 소비자에게 유통마진을 돌려주고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세세하게 이야기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느리긴해도 지속 가능한 방법이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제주도 플레이스 캠프에서 열었던 팝업매장 ‘보부스토어’의 전경.

서울 성수동 자그마치에서 열린 보부스토어 내부.

고객이 직접 신어보고 정리할수있게끔 유도한 마더그라운드의 ‘신발장’. 제주도 ‘페이보릿’ 내에 설치되어 있다.

-그래도 ‘신발은 신어봐야 안다’는 고객들이 많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 직접 신어보면서 경험해 보는 공간이 있으면 좋긴 하지만, 한 공간에서 소비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느낌이 강하다. 전국 곳곳을 돌면서 한시적이지만 매장을 여는 게 효율적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해 ‘보부스토어’라는 팝업매장을 열기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신발장’이라는 무인매장도 시작했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호텔 ‘플레이스캠프 제주’ 1층에 위치한 ‘페이보릿’이라는 편집숍에 말 그대로 큰 신발장을 만들어 놨다. 신발 색깔별로 사이즈 별로 신발장 안에 쭉 진열해뒀다. 소비자가 직접 신발을 꺼내 신어보고 마음에 들면 주문할 수 있는 구조다. 신발 사이즈 찾고 고객 응대하는 등 직원이 하는 일을 최소화했다. 주문만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보부스토어’와 ‘신발장’이 상설매장이 없는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확장할 계획이다.


첫번째 컬렉션의 원가 세부내역. 구매 페이지 하단에 부자재 가격부터 포장비, 공임비까지 전부 공개한다.

-금형제작비·원단·임금·마진까지 원가내역을 아주 상세하게 공개한다. 동종업계에서는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나.

△우려했던 부분인데 실제로 불만이 접수된 건 없었다. 패션분야가 마진이 박하다. 다들 울며 겨자먹기로 세일하는 거지 많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동종업계에선 이해하는 부분이지 않나 싶다. 그러다 보니 공개 안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친구들은 안 궁금한데 굳이 왜 공개하느냐는 얘기를 더 많이 했다. RO는 소비자가 12만8천원짜리 신발이다. 일반적인 유통과정을 거친다면 유통마진 30% 를 더해 18만3천원에 팔렸을 제품이다.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다. 첫번째 컬렉션 제품은 9만8천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중간에 유통업체가 있었다면 소비자가가 14만원이다.

마더그라운드는 몰딩업체부터 제작공장까지 협력업체를 전부 공개한다.

-제작 과정에서 협업한 업체들도 대놓고 알려준다. 업체 리스트는 일종의 무형자산 아닌가.

△협력업체들과 신뢰가 있기에 가능하다. 공장 리스트를 공개하기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디자인 카피에 대한 우려 때문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이 없다. 처음에 공장을 선택하면서 고려했던 부분 중에 하나다. 영세한 업체는 구조적으로 다른 거래처에서 카피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부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지금 거래하는 삼영시스템은 디자인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인식이 있다. 역으로 공장에서 디자인 등록 빨리하라고 걱정해주기도 했다. 또 제작 크레딧을 공개하는 건 고마워서이기도 하다. 삼영시스템과 거래하는 브랜드 중에 마더그라운드가 가장 소규모다. 발주량이 많지 않은데도 맡아서 제작해주는 데 대한 고마움이 있다. 실제로 마더그라운드 제작공장이냐고 문의하는 업체들도 꽤 있단다. 그런데 다 작은 업체들이라 공장 사장님 얘기로는 수익 측면에서 아직 도움은 못 받았다고 하시더라.

-협력업체를 넘어서 동반자 느낌이다.

△처음 신발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좋은 업체를 만나서 함께 만들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신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공장을 수소문했다. 신발 제조업이 발전한 지역인 부산의 신발협회 사이트에서 업체 리스트를 뽑아서 100군데 정도를 추렸다. 일일이 연락을 돌리며 10곳으로 좁혔고 1박2일로 돌아다니면서 릴레이 미팅을 진행했다. 프로토타입으로 지점토를 깎아서 만들어 갔다. 신기하게 보시더라, 나중에 열정 때문에 함께 개발할 마음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삼영시스템은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유럽 브랜드의 기능성화도 제조한다.

-샘플 제작에만 한 달이라니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린다.

△손발이 맞는 업체라서 감수한다. 시간적으로는 좀 아쉽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작은 업체이다보니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이 정도 규모에서 수작업 공정이 포함된 업체는 흔치 않다.

가죽 가방 브랜드 ffroi(프루아)와 콜라보한 제품. 프루아의 여성 고객층이 두터운만큼 산호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해 큰 사랑을 받았다.

-패션 전문 크라우드 펀딩 ‘스몰바이츠’ 기획도 참여했다. 와디즈나 텀블벅과 차이점이 있다면.

△아이디어를 구상한 건 꽤 오래됐다. 구현하는 법을 몰라 단념했다가 우연히 기회가 생겼다. 캐시슬라이드 1층 로비에서 보부스토어를 연 게 인연이 됐다. 패션 브랜드는 색도 여러 개고 티도 있고 자켓도 있고 컬렉션 형태지 않나. 그런걸 감안해서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는 게 아니라, 기간, 펀딩 등을 디테일하게 정할 수 있다. 프리오더 개념이다. 중간 바이어를 두지 않고 소비자가 프리오더할 수 있으면,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했다. 와디즈나 텀블벅은 후원의 개념이 커서 선택권이 적다. 스몰바이츠는 쇼핑의 개념이 들어가서 다양한 선택권을 기본으로 한다.

-해외 진출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내년 1월에 파리에서 팝업 매장을 여는 게 확정됐다. 유럽 에이전시와 계약했고 본격적으로 해볼 계획이다. 일본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도 등록 준비 중이다.

-색깔이 분명한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브랜드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규모를 유지하고 싶다. 다른 업체와 서로의 능력을 활용하면서 협업해나가고 싶다. 책임질 사람이 많이 생기면 가고 싶지 않은 길을 또 가야 하지 않나. 몸집을 크게 키울 필요는 아직 못 느끼고 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사진제공=마더그라운드 ⓒ Kkj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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