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제약바이오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으며 많은 투자도 함께 이뤄졌습니다. 올 초만 해도 2019년은 K바이오가 강국으로 올라서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많았습니다. 기술수출이 이어졌고, 임상 3상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던 만큼 바이오시밀러 뿐 아니라 블록버스터 의약품 탄생도 ‘시간 문제’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과도한 자신감이었을까요. 올 한해 K바이오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인보사 사태부터 신라젠, 헬릭스미스 쇼크에 기술 수출 반환까지 이어지며 ‘여기까지인 것 아닌가’라는 회의적인 분석이 시장에서 돌았습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실패할 수 있는 것 역시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강조합니다. 애초 신약 개발은 100번 이상 실패해야 한 번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달콤한 과실이 함께 하는 것이고요. 실패를 하려면 도전을 해 봐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에서는 도전 그 자체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인보사
임상 3상 시험에는 수백명에서 천 명 이상의 연구 인력이 필요합니다. 금액도 3,000억원 이상 필요하고요. 자체 연구 인력 뿐 아니라 각 병원에서 진행 중인 임상 시험을 관리하기 위한 인력도 필요합니다. 즉 시험 설계, 현장 관리, 데이터 분석, 서류 작성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데, 국내 기업 중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제약바이오를 전공해 글로벌 제약사에서 직접 임상시험을 수행해 보고, 실패도 해본 인력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초기 임상 시험이 아닌 임상 3상 시험을 수행해 본 경험자는 극히 드뭅니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 서울시티클럽 컨벤션홀에서 열린 신라젠 기자ㆍ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문은상 신라젠 대표이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신라젠은 데이터 모니티렁 위원회(DMC)로부터 임상중단 권고를 받은 항암바이러스물질 ‘펙사벡’에 대해 임상3상을 최종 중단하기로 했으며 대신 현재 진행 중인 ‘펙사벡’과 면역관문억제제의 병용투여 임상에 집중해 치료효과를 다시 입증하고 기술수출(라이선싱 아웃)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성형주기자 2019.08.04
노바티스 스위스 본사에서 실제로 임상 시험을 수행해 본 권명옥 박사는 몇 안되는 경험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노바티스에서 배운 것 중 K바이오가 가장 귀기울여야 할 부분으로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되지 않는 물질을 포기할 줄 아는 법”을 꼽았습니다. 아울러 한국 바이오산업이 발달하기 위해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며 외국계 제약사의 영업, 마케팅 본부 뿐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신약이라도 연구소를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비록 은퇴를 앞둔 과학자들이 아시아로 파견되겠지만, 신약 개발 프로세스는 비슷한 만큼 이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며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입니다. 아울러 국내 대형병원에서 외국계 제약사의 임상시험을 많이 진행해야 하는 점도 꼽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습득할 수 있다고 권 박사는 내다봤습니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이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DPN 3-1상 결과 등을 설명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오승현기자 2019.9.26
신약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우리나라의 바이오벤처 기업 대부분은 수익 구조가 취약합니다. 신약 개발에 나서는 벤처가 수익구조가 굳이 탄탄할 이유는 없지만 이 때문에 신약개발에 실패했을 경우 회사의 존립조차 위태롭게 되고, 투자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는 만큼 이를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바이오벤처에 일반 개인 투자자들의 비중이 높은 만큼 이들에게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임상 시험에 실패한 모 기업의 연관 검색어에는 ‘이혼’과 같은 부정적인 검색어가 나타납니다. K바이오에 희망을 걸고 투자를 진행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할까요. IT, 조선, 철강 등 기존 산업과 달리 바이오는 새로 육성하는 사업인 만큼 전문가들 중 바이오를 전공했던 사람이 부족합니다. 증권사 리포트도 잘 안 나옵니다. 업계가 좁다 보니 학교, 회사 등에서 이미 친분을 쌓은 경우가 많고 서로 너무 잘 알아 전문가들도 쉽사리 특정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이사가 24일 서울 영등포구 NH투자증권 강당에서 유전자치료제 ‘엔젠시스(VM202-DPN)’의 미국 임상 3상 결과 설명을 하고 있다./성형주기자 2019.09.24
글로벌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비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얀센은 13조원, 애브비는 12조원, 머크는 11조원, 노바티스는 10조원을 R&D에 투입했습니다. 그야말로 쏟아 넣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시장 전체 규모가 약 22조원이고,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유한양행의 지난해 매출이 1조5,000억원입니다. 아직은 실패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는 이유입니다. 다른 산업에 비해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은 국내총생산(GDP) 10위권이라는 경제 규모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릅니다. 올해 실패를 성장통 삼아 더욱 성장하는 K바이오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