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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구 명예회장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 공장과 여천 공장에는 공장이 채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어졌다. 그는 대부분의 연구실이 각 공장 별로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개발용 컴퓨터, 만능 시험기, 금속 현미경, 고주파 용해로 등 첨단 장비를 설치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진을 초빙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를 집행했다. 또한 제품개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산업 디자인 분야의 육성을 위해 1974년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실을 발족시켰으며 일본 등 디자인 선진국에 연수를 지원해 전문가를 육성했다. 이어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키고, 고분자·정밀화학 분야를 집중 연구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ABS수지 등 다양한 신제품 개발로 플라스틱 가공산업의 기술고도화를 이끌었다. 1985년에는 금성정밀,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또한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의 제품시험연구소를 개설하고 가혹 환경 시험실, 한냉·온난 시험실, 실용 테스트실 등 국제적 수준의 16개 시험실을 갖춰 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했다.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구 명예회장은 1980년대 말 대덕연구단지에 LG화학 종합기술연구원 설립을 추진할 당시 프로젝트 출범 초기부터 우수 기술인재 유치를 위한 통 큰 투자를 신신당부하기도 했다.또한 구 명예회장은 연구 개발 조직에 끊임없이 동기와 의욕을 북돋아주는 일에 늘 적극적이었다. 그는 연구소에 관해서는 우수 인력을 어느 곳보다 우선해서 선발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임원의 정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1982년에는 그룹 ‘연구개발상’을 제정해 연구원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LG 관계자는 “구 명예회장의 인재 사랑은 오늘날 LG가 R&D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문화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