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차기 총리에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했다. 지난해 5월3일 당시 정세균(왼쪽) 국회의장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 초청 헌법 기관장 오찬 자리에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한 17일은 내년 총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날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직접 후임 총리를 공개하면서 총리 교체 배경의 하나로 ‘이 총리 자신의 정치를 위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총리 인사 발표를 할 것이라는 점을 이 총리에게 전일 주례회동 이후 먼저 알려주면서도 “총리도 이제 자기의 정치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고 이 총리가 전했다.
이에 현재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이 총리의 향후 정치 행보에 문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총리 역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 복귀 의사를 계속 내비쳐왔던 만큼 이번 인사를 기점으로 이 총리가 ‘정치인 이낙연’으로 다시 옷을 갈아입은 후 정계 복귀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향후 행보에 대해 구체적 언급은 삼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총리가 정 의원의 총리 지명으로 무주공산이 된 ‘정치 1번지’ 종로 지역구에 출마하든, 민주당 총선 총책을 맡으면서 비례대표에 출마하든 내년 총선을 당내 입지 강화의 발판으로 삼은 후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 전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오른쪽은 이낙연 국무총리./연합뉴스
문대통령 “자신의 정치 위해 놓아드려야”
문 대통령은 이날 차기 총리 후보자를 공개하면서 이 총리에 대한 아쉬움과 고마움의 마음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 국정 개혁의 기반을 마련하고 내각을 잘 이끌어주신 이 총리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책임 총리로서의 역할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셨고, 현장 중심 행정으로 국민과의 소통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 총리님이 내각을 떠나는 것이 저로서는 매우 아쉽지만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신망을 받고 있는 만큼 이제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자리에 서든 계속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주시리라 믿는다”며 이 총리에 대한 신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물론 아직 당내 구체적 역할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이 총리가 어떤 역할을 맡는 게 당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시나리오는 당장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맞대결 구도가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큰 그림에서 이 총리가 전국적인 민주당 지지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선거대책위원장 역할을 하면서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가 17일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 출범식’에 참석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과 대화하며 웃고 있다./연합뉴스
이총리 “대통령과 국민에 고마운 마음”
이 총리는 지난 2017년 5월31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이자 제45대 총리로 임기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기대는 초반부터 각별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임명장 수여식에서 ‘책임 총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헌법상 국무총리 권한 보장을 약속했다. 내치는 물론 외교에서도 ‘투톱 외교’를 도입했다. 이 총리에게 외교 일정을 분담시킨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 총리에 대한 신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런 가운데 이 총리는 10월28일에는 재임 기간 2년 4개월 27일(881일)을 기록하면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로 등극했다. 이전 최장수 총리는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전 총리(880일ㆍ2010년 10월1일~2013년 2월 26일)였다. 이에 이 총리는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르는 여론 지지도로 보답했다.
하지만 총리 재임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각이 타성에 젖는다는 우려와 국정 후반기 경제 전문가 기용 필요성, 거물급 인사의 총선 역할론 등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이날 총리 교체가 단행됐다. 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이 총리가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문 대통령의 표현대로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인 시점이 된 것이다.
이 총리는 인사 발표 이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크다”며 “더 잘하지 못한 아쉬움도 계속 생각난다”고 밝혔다. 향후 거취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직 없다). 호사가들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저나 대표나 청와대는 그런 이야기까지는 한 적 없다”고 답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이낙연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시장에서 전기화물차 1호 완성차 운전석에 앉아보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