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1971년 스미스소니언 합의

美, 달러 패권 위해 약속 파기

리처드 닉슨 대통령

미국 달러화의 평가절하(금 1온스당 35달러→38달러)와 환율 변동폭 확대. 1971년 12월18일 서방 1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의 결과다. 미국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와 캐나다·일본·네덜란드·벨기에·스웨덴 10개국은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이틀간의 격론 끝에 합의를 이뤄냈다. 각국의 합의는 곧 ‘스미스소니언 합의(Smithsonian Agreement)’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당시에는 다르게 불렸다. ‘국제통화 및 통상 위기 수습책.’


위기란 리처드 닉슨(사진) 미국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1971년 8월15일)으로 야기된 혼란이다. 미국만 금본위 제도를 채택하는 대신 미화 35달러를 가져오면 금 1온스를 내주기로 한 약속(브레턴우즈 협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에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유럽 외환시장은 아예 문을 닫았다. 미국이 자존심을 버리고 약속을 깬 것은 경제력 약화 탓이다. 일본과 독일에 대한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와 베트남 전쟁비용 지출로 미국 경제가 허약해지자 각국은 보유 달러를 팔아 금을 샀다. 금이 바닥날 무렵 영국마저 미국의 지불능력을 불신해 30억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하자 불태환을 선언해버렸다.

닉슨 쇼크 이후 무역이 타격을 받고 외환시장이 출렁거리자 나온 대안이 바로 스미스소니언 합의다. 미국 달러화를 7.895% 절하하는 반면 일본 엔화는 16.88%, 독일 마르크화는 12.6%, 영국 파운드화와 프랑스 프랑화는 각각 8.57% 내리자는 합의는 쉽지 않았다. 각국은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했으나 차선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입품에 대해 직접 관세를 매기겠다는 미국의 으름장이 먹혀들었다. 미국이 동맹국들의 팔을 비틀어 도출한 합의는 잘 지켜졌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은 불과 1년2개월 뒤 달러가치를 추가로 내렸다. 금 1온스당 42.22달러. 미국 달러화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컸다.

달러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자 미국은 1976년 변동환율제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시스템(킹스턴 체제)을 깔았다. 2차 대전 이후 수차례의 국제통화체제 변경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곤경으로 시작돼 또 다른 기축통화 도입이 논의됐다. 그러나 후자는 지켜진 적이 없다. 자원과 군사력을 금융과 결합한 미국의 달러화는 여전히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다. 바뀐 게 있다면 미국의 표적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된 정도다. 실물경제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달러의 패권과 미국 우선주의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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