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 이사장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인사청문회부터 시작해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 서열 5위의 국무총리를 맡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논란을 극복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이자 정세균 총리 후보자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는 나라를 위해 백의종군한다는 각오로 일하는 것이다.
이전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는 현재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나란히 1·2위에 오를 정도로 정치적인 꿈을 가지고 있다. 정 후보자는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모든 꿈을 내려놓고 국무총리라는 자리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마지막 기회로 삼아 열정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은 경제성장률 1%대 추락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어렵다. 인선한 문재인 대통령과 정 후보자 모두 인정한 바처럼 경제를 살리라는 게 국민들의 기대이자 국가적 사명이다. 쌍용그룹에서 17년 근무하며 임원에 오르고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 실물경제통으로 알려진 그가 해야 할 우선적인 과제는 민간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고 시장경제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표방하며 임금 인상과 노동권 강화를 시행하고 복지 재원 등의 마련을 위해 법인세를 인상했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정책과 수출 경쟁력 약화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외국 기업의 한국에 대한 투자보다 무려 세 배나 많은 실정이다. 이러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 정 후보자는 청와대 참모와 여당 그리고 지지 계층인 시민단체를 설득해 기업을 규율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활동의 파트너로서 인식하게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규제다. 과거 영국의 산업혁명 때 붉은 깃발 규제처럼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묶여 신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국무총리가 규제개혁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있다. 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규제개혁위원회가 ‘불필요한 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규제 신설을 억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부처의 규제는 이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게 돼 있다. 실물경제를 아는 총리가 마음을 다져 먹고 위원회를 운영해나간다면 기업 활동을 옥죄는 많은 규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되고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준 경우가 많다. 새 총리의 중요한 임무는 참모들이나 각료들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 경제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해 올바른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뿐 아니라 외교 문제에 대한 동맹국들의 우려나 사회문제에 대한 각 계층의 의견들도 충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총리로서 행정부의 기능을 회복하고 장관들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도 필요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발표를 외교부 장관이 아닌 청와대 안보실 차장이 하고, 북한 어부를 군사분계선에서 송환하는 결정을 국방부 장관이 모르게 해서는 안 된다. 행정부를 통할하는 총리가 대통령과 협의하고 필요하면 청와대 참모들과도 대화해 장관들이 기를 펴고 일하게 해줘야 한다.
총리의 중요한 권한 중 하나가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이다. 반환점을 지난 현 정부가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제대로 일하려면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장관이 임명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낙선한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장관 자리에 앉게 해서는 안 된다. 정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정말로 능력을 갖춰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장관으로 천거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