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왼쪽 두 번째)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에서 시작한 다주택 고위공직자에 대한 ‘1주택 원칙’이 공직사회 전반은 물론 정가로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앞서 열일곱 차례의 대책이 나올 동안 정부와 청와대 등은 국민의 다주택을 ‘투기’라고 지정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엄연한 투자’라며 항변해왔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무원 신분이지만 개인 자산인 주택을 정부가 팔라고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으로 보장된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그냥 의지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강남은 팔지 않고 있다”며 “전형적인 보여주기 행정으로 시장에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논란만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직자·국회의원도 ‘1주택자’ 원칙?=1주택자가 돼야 한다는 권고(?)가 전방위로 퍼지면서 관가에서는 이제 고위공직자 승진 조건으로 ‘1주택 보유’라는 조건이 추가된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온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2주택자가 된 경우에도 투기로 오해를 살 수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였는데 부담감이 더 커졌다”며 “앞으로 고위직이 되려면 무조건 주택 한 채만 보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에서 시작된 1주택 원칙은 공직사회를 넘어 국회까지 점령하는 모양새다.
시장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선 공직자의 다주택 매물이 시장에 나와도 집값 안정에는 새 발의 피라는 것이다. 지난해 아파트 거래 건수는 총 56만여건이다. 이 중 공직사회에서 나올 다주택 매물은 극히 일부다.
무엇보다 일반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오히려 서울과 지방 주택 중 서울 집만 남기는 모습을 보이면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아내와 자식을 죽인 계백 장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의지를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 자식을 죽이는 것과 백제가 망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냐”며 “절박함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시장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미 다주택을 보유한 것 자체로 국민들이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라 이제 와서 파는 모습을 보여줘 봤자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근원적인 문제 해결과 거리가 먼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정책”이라며 “부동산시장에 맞는 수요·공급 분석을 한 뒤 정책을 펼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직자에 대한 비판이 있다고 해서 ‘팔라’는 지침을 내리는 것은 한국 사회가 ‘후진국스럽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절하했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사실상 ‘강남 집을 팔라’는 신호를 줬다. 그런데 정작 고위공직자들의 경우 비강남 집을 처분하고 강남 집을 남기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이 오히려 시장의 분노를 더 자극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묻지도 말고 팔아라, 재산권 침해 소지도=이런 가운데 공직사회 및 여당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다주택자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어쩔 수 없이 2주택 이상을 보유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세종에 근무하는 한 경제부처 관료는 “가족이 모두 내려와 살 수 없어 이곳에서 아파트를 추가 분양받은 경우인데 다주택자라는 이유로 집을 팔아야 한다면 지나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재산을 사실상 강제 처분하도록 하는 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있다. 법적 이슈로 비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공직자라는 이유로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듯 보이는 것 자체가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형규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당사자인 고위공직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며 “다만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보다 기본권 제한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런 특별권력 관계라는 관점에서 정당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임부혁 법무법인 산우 변호사는 “공직자가 법적으로 다툴 방법은 사실 어렵기는 하지만, 자기 집을 다른 사람이 강제로 팔라고 하는 것이니 재산권 침해 소지는 있다”면서 “처분권고 이행 여부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거나 다른 불이익을 준다면 정말로 법적으로 다퉈야 할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조치가 부동산대책의 반시장 논란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미 초과이익환수제, 15억원 이상 대출금지 등의 이슈가 위헌 논란을 빚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개인의 자유를 청와대가 앞장서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기 변호사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규제 일변도이고 법에 근거하지 않은 처분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밝혔다. /진동영·오지현·변수연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