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스피커로 구글 AI가 탑재된 냉장고를 조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치열한 플랫폼 전쟁을 벌이던 정보기술(IT) 공룡들이 사물인터넷(IoT)으로 가전들을 서로 연결하는 스마트홈 시장을 놓고 이례적인 동맹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애플·구글·아마존 등 IT기업과 IoT용 통신 프로토콜의 규격 연합체 지그비얼라이언스는 18일(현지시간) 각종 스마트홈 제품들의 연동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지그비얼라이언스 회원사인 삼성 스마트싱스·이케아·NXP반도체·슈나이더일렉트릭 등도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번 협력사업으로 스마트홈 기기 전용 개방형 통신기술 표준을 개발하는 워킹그룹이 결성된다. 애플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등 어느 AI 음성비서든 스마트홈 기기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호환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그비얼라이언스는 우선 화재경보장치·일산화탄소(CO)감지기·스마트자물쇠·보안시스템·냉난방공조장치 등 안전 관련 스마트홈 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어 다른 종류의 기기나 솔루션으로 표준규격 제정을 확장하고 규격 초안과 예비 오픈소스는 내년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이 같은 스마트홈 동맹은 IT 공룡들이 글로벌 플랫폼 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애플과 구글은 스마트폰 시장의 오랜 적수이며 구글과 아마존은 클라우드 시장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아마존·구글이 스마트홈 시장을 제한하는 ‘영역전쟁’을 피하기 위해 보기 드문 동맹을 맺었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홈 시장을 더 키우기 위해 최소한의 경쟁규칙을 만든 셈이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홈 시장은 올해 740억달러(약 86조원)에서 오는 2023년 1,92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아마존·구글·애플은 연동이 불가능해 소비자가 집 안에 이들 업체 중 한 곳의 제품들로 통일시켜 스마트홈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를 가진 집이라면 아마존 AI 플랫폼을 탑재한 스마트 기기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된 기준이 생기면 아마존 AI 스피커로 구글의 스마트자물쇠를 조작할 수 있어 소비자의 선택폭이 한층 넓어진다. 스마트기기를 만드는 제조사 입장에서도 어느 IT기업의 AI를 탑재할지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 수 있다.
최근 스마트홈 기기를 둘러싸고 보안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례적인 동맹 결성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지난 10월 CNN은 해킹연구기관인 보안연구소(Security Research Labs)의 연구를 인용해 해커들이 AI 음성비서를 통해 사용자의 대화 내용을 도청하거나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 민감한 정보를 넘기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더구나 최근 아마존·구글 등이 AI 스피커로 사용자의 목소리를 녹음, 수집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도 지적됐다. 이에 따라 지그비얼라이언스는 ‘IP를 통해 연결된 가정’이라는 목표하에 스마트홈 기기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CNBC는 “아마존·구글·애플이 연동 가능한 표준을 만든다고 해도 이들 AI 플랫폼에 연결된 스마트홈 기기를 안전하게 업데이트하는 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