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가운데) 총리 내외가 올해 4월 13일 도쿄 도심 공원인 ‘신주쿠 교엔’에서 열린 ‘벚꽃을 보는 모임’ 행사 중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설명도 책임도 없이 도망만 다닌 정권.” “장기집권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총리의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과 각료들의 잇따른 실언으로 지지율 급락 등 사면초가에 빠졌다. 특히 임시국회 기간 중 ‘벚꽃을 보는 모임’ 사유화 논란과 관련한 야당의 추궁에 ‘모르쇠’로 일관하자 여론마저 등을 돌린 상황이다. “장기집권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아베 총리가 숙원으로 추진해온 개헌 역시 ‘이번 임기 중에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론이 자민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콘크리트 지지율’의 공신이었던 경제성장 역시 각종 지표 악화와 소비세 인상의 부작용 우려 등으로 적신호가 켜졌다.
교도통신이 지난 14~15일 성인 2,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42.7%로 전월 대비 6.0%포인트 급락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3.0%로 집계돼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를 기록했다. 아베 내각 지지율의 데드크로스는 지난해 12월 이후 1년 만이다. 아베 총리의 ‘벚꽃을 보는 모임’ 사유화 논란이 점화된 뒤 참석자의 면면을 둘러싼 추가 의혹과 정권의 무책임한 대응 등이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며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총리 본인과 여당의 안이한 대처는 불붙은 여론에 되레 기름을 부었다. 9일 폐회한 임시국회 기간 내내 야당이 제기한 의혹과 추궁은 당사자의 모르쇠에 가로막혔다. 초대자 명부는 ‘삭제’를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고, ‘총리가 출석하는 예산위원회를 열자’는 야당의 요구 역시 거부당했다. 특히 아베 총리는 최근 내외정세조사회 강연에서 야당 측을 오히려 비난하고 나서 ‘적반하장’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그는 벚꽃 스캔들과 함께 2017년과 2018년 연이어 불거진 사학비리 의혹인 ‘모리토모·가케학원’ 사건도 언급하며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정책 논쟁 이외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아사히신문은 “총리는 ‘해(年)가 바뀌면 모든 문제도 잊힌다’며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치권력이 국민에 대한 설명을 포기한 끝에 기다리는 것은 민주주의 토대의 붕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벚꽃을 보는 모임 의혹에 대한 총리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83.5%에 달했다.
각료들의 잇따른 부정과 실언도 아베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있다. 9월 개각 이후 한 달 만에 경제산업상과 법무상이 잇따라 사임한 것은 물론 일부 각료들이 국민 정서를 의식하지 못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기 때문이다. 10월 스가와라 잇슈 전 경제산업상이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으로,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은 부인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이 7월 참의원선거운동에서 법정 상한액을 넘는 보수를 운동원들에게 지급한 혐의로 각각 불명예 사퇴했다. 여기에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상은 대학입시 민간 영어시험 도입 정책과 관련해 ‘경제적·지리적 조건이 불공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자신의 분수에 맞춰 승부를 내면 된다”고 말했다가 역풍을 맞았고 민간 영어시험 도입까지 연기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 문제에 큰 관심이 없던 일본 국민들도 ‘장기집권의 폐해’를 우려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0일 총리 재임일수 2,887일을 맞아 패전 전후를 통틀어 가장 길게 집권한 가쓰라 다로 전 총리(2,886일)의 기록을 넘었다.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정권이 장기집권하면서 긴장감을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지통신의 12월 여론조사(성인 2,000명 대상)에서 ‘아베 정권이 장기집권으로 느슨해졌다’는 평가는 68.6%나 됐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14.2%에 불과했다. ‘아베 정권이 역대 최장기정권답게 행동하느냐’는 질문에는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37.5%, ‘걸맞는다’는 평가가 29%로 각각 나타났다.
아베 내각을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캄캄하다는 분석이다. 당장 내각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의 견인차였던 경제 부문에서도 심상치 않은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일본은행이 최근 발표한 12월 전국 기업 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에 따르면 기업의 경기 체감을 보여주는 대기업·제조업 업황판단지수(DI)가 9월 조사 대비 5포인트 악화한 ‘0’을 기록했다. 이는 4분기 연속 악화이자 일본은행이 대규모 완화에 나서기 직전이었던 2013년 3월의 ‘-8’ 이후 6년9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DI는 일본이 약 1만개 기업 중 경기가 ‘좋다’고 답한 기업 비율에서 ‘나쁘다’고 밝힌 기업 비율을 차감해 산출한다. 이번 DI 악화는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 따른 외수 부진과 10월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소비침체, 제19호 태풍 하기비스로 인한 공장 조업 중단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하는 개인소비 급감이 발등의 불이다. 총무부가 발표한 10월 가계 조사에서 1가구(2명 이상)당 소비지출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1%나 줄었다. 이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올렸던 2014년 4월(-4.6%)보다 큰 하락폭이다. 이번 인상의 경우 충격 방지를 위해 경감세율·포인트환원제도 등이 함께 실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락폭이 우려스럽다는 평가다. 미나미 다케시 일본 농림중금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산케이신문에 “겨울 보너스의 용처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저축하겠다’는 응답이 70%를 넘을 정도로 소비의욕은 둔화돼 있다”며 “내년 6월 포인트환원제도가 종료되면 본격적인 소비 하락이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일본 정부가 26조엔 규모의 초대형 재정부양책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다.
이 같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숙원으로 추진해온 개헌 논의도 주춤하고 있다. 자민당 내에서도 ‘이번 임기 중에는 어렵다’는 회의론이 나오는 가운데 아베 총리 역시 최근 ‘2020년 개헌’에서 한발 물러났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2020년 새 헌법 시행’ 의지를 내비치며 관련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지만 최근 일련의 악재 속에 ‘2020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4선 가능성이 제기되고도 있지만 국민 10명 중 6명 이상(61.5%, 교도통신 여론조사)이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