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츠 교수, 길들임 경로 추적
동식물·인류의 ‘쌍방 진화’ 설명
생존 위한 조력·성공 사례 소개
스콧 교수는 ‘축적’에 포커스
길들임을 통제권 수단으로 해석
개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다. 개는 원래 늑대에서 인간 친화적으로 된 것이다. 왜 늑대는 개로 진화했을까. 3만 년 전 수렵 채집인들이 한 장소에서 점점 더 오래 머물며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다. 배고픈 늑대들은 인간 사냥꾼들이 가져오는 고기를 얻어먹기 위해 접근하게 됐다. 인간에게 접근한 늑대 중 공격적인 늑대는 쫓겨났지만 신중하고 순한 늑대는 받아들여졌다. 선택받은 늑대는 인간의 친구가 되면서 개다워졌고, 인간과 같이 살면서 육식이 아닌 잡식으로 변했다. 늑대들은 인간에게 ‘길들여져’ 인간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며 손짓과 눈짓 같은 인간의 사회적 단서들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생물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앨리스 로버츠 교수는 신간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에서 길들임을 통해 늑대에서 개로 진화한 사례처럼, 야생의 씨앗과 들판의 동물이 인류에게 중요한 협력자가 되기까지 경로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놓는다. 저자는 인류가 길들인 많은 종 가운데 10개를 선별했다. 개·밀·소·옥수수·감자·닭·쌀·말·사과, 마지막으로 우리 ‘인류’다. 고고학·언어학·역사학·유전학·지질학을 넘나드는 저자는 1만여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서부터 21세기 유전자 연구소까지 깊고 넓은 시공간을 가로지른다. 그러면서 ‘야생동식물이 언제, 어떻게 인류와 협력자가 됐고 그들이 인류의 생존과 성공에 어떻게 조력했을까’라는 주제를 관통한다.
특히 저자는 작물화와 가축화는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길들임은 ‘쌍방’의 과정이며 인류 역시 길들임의 주체이자 객체라는 것이다. 소의 경우 농업이 시작된 무렵인 7,500년 전 소뼈와 그로부터 3,000년 전 뒤 발견된 소뼈 크기를 비교해보면 소뼈의 크기가 3분의1 가량 더 작아졌다. 목축의 초점이 고기 생산으로 옮겨왔고 인간이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소가 채 성숙하기 전에 또는 성숙하자마자 도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보면 인간이 소를 일방적으로 변화시킨 것 같지만 인간 역시 소를 길들이면서 DNA가 바뀌었다. 인간은 소를 키우고 우유를 먹기 위해 젖당 내성 유전자를 생산하게끔 진화된 것이다.
저자는 인류도 “의도하지 않게 자기 자신을 길들였다”고 말한다. 인간이 보다 용이하게 다른 종에 접근할 수 있도록 친밀하고 덜 공격적인 성향과 외모로 스스로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상보다 눈썹 위 뼈가 덜 튀어나오는 등 전반적으로 덜 우락부락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거 중 하나다.
저자는 길들임의 기원과 경로를 추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식량 문제, 기후 변화, 줄어드는 야생 등 인간이 초래한 지구의 위기도 직시한다. “우리와 협력하게 된 종들만 돌봐서는 안 된다. 야생과 함께 번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이번 세기의 과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가 길들인 종도 원래 야생이었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야생 친척과 교잡했다. 저자는 길들여진 세계와 야생의 세계가 이어져 있으며, 야생을 가꾸는 것이 우리에게 직면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2만5,000원.
기존 고대사의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신간 ‘농경의 배신’에서도 첫 장부터 인류사에 중요한 요소인 ‘길들이기’가 등장한다. 다만 ‘길들이기’를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보통 인류가 동·식물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농사를 짓게 됐고 촌락과 도시 국가를 이루면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인 제임스 C. 스콧 예일대 교수는 동·식물의 길들이기만이 아닌 길들이기 ‘축적’으로 인류가 진화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불, 다음에는 식물과 가축, 그리고 국가의 국민과 포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여성까지 길들이기 과정은 결국 번식력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는 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처음 농경·정착 생활을 시작한 지 4,000년도 더 지나서 국가가 생겨났다는 것을 토대로 저자는 작물 재배와 정착 생활이 성립하면 국가가 즉각 등장한다고 본 이론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2만2,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